미셸투르니에의 꼬마 푸세의 가출을 읽고
- 최초 등록일
- 2006.11.04
- 최종 저작일
- 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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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 글은 세계문학 시간에 제출한 레포트입니다.
높은 점수를 받았음은 물론이고 참고문헌이 적기 때문에 가치가 있습니다.
분석위주이고 감상도 들어가 있습니다.
단편들이 거의 한 번 씩 언급이 되지만, `기쁨이 내게 머물게 하소서`와 `트리스탄 복스`의 이야기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누가 정말 트리스탄이고 그의 아내 이졸데가 사랑한 트리스탄은 누구인가?
강의 시간에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관한 전설을 들었었다. 누가 정말 이졸데이고, 트리스탄은 (흰 손의)이졸데를 이졸데로 사랑한 것인가? 전설 속에서 흰 손의 이졸데는 트리스탄에게 사랑의 배신을 당한다. 아마 제목이 ‘트리스탄 복수’가 되어야 할 것이다.
「트리스탄복스」는 또 다른 것을 생각게 해준다. ‘정체성’이 바로 그것이다. 이 이야기가 언제 창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배경은 라디오가 지금의 인터넷처럼 영향을 미치던 시대이다. 라디오란 매개체를 가운데에 두고 ‘추남’ 로비네는 ‘미남’ 트리스탄이 되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그것은 로비네 뿐만이 아니라 그를 지켜보는 아내와 비서도 마찬가지다. 그에게 있어 라디오는 또 다른 그를 만드는 가상공간인 셈이다. 우리의 인터넷과 같이 말이다. 우리는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 속에서 또 다른 나를 만든다. 아바타로 구체적인 모습을 만들기도 하고 카페나 블로그를 통해서 평소와는 다른 모습으로 나를 소개하고 나의 의견을 말 할 수도 있다. 물론 그것은 다양한 정체성의 역할체험을 통해서 진정한 정체성 확립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로비네를 영영 잃어버리고 또는 잊어버리고 트리스탄이 될 위험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물론 인터넷상에 정체성의 혼란이 로비네의 그것과 같지는 않다. 하지만 아찔한 고독의 가능성은 우리에게도 있다고, <트리스탄복스>는 이야기 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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