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경복궁을 다녀와서
- 최초 등록일
- 2006.06.19
- 최종 저작일
- 2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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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경복궁을 다녀와서 쓴 자료입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내가 바라본 경복궁
1. 경복궁의 배치적 특징
2. 경복궁의 주요 건물 및 건축물
1)근정전
2)강녕전
3)교태전
4)경회루
5)광화문
6)사정전
7)아미산
8)자경전
3. 일제 강점기하의 경복궁
4. 조선총독부 건물의 철거와 그 이후
Ⅲ. 결론
본문내용
2. 경복궁의 주요 건물 및 건축물
1)근정전(動政殿)
조선 시대의 2층 건물로 국보 제223호이다.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5칸으로 총 25칸이며 중층건물(重層建物)로 신하들의 조하(朝賀)를 받거나 정형(政令)을 반포하는 정전이며, 때로는 사신을 맞아들이기도 하고 양로연(養老宴)이나 위로연을 베풀기도 하던 곳이다. 현재의 건물은 1867년 중건된 것으로, 경복궁 창건 당시인1395년(태조 4)에 지은 건물이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뒤 270여년 만에 다시 지은 건물이다. 그러나 태조 때의 건물을 원래대로 복구한 것이 아니라 회랑(廻廊)을 단랑(單廊)에서 복랑(複願)으로 바꾸고 월대(月臺)까지도 새로 만드는 등 변화가 있었다. 건물의 외부 정면 좌우에는 청동제 향로를 놓았으며 정면 서쭉계단 옆에는 무쇠로 만든 드무를 두었다. 드무에 물을 담아두어 이 물에 화기(火氣)의 얼굴이 비치면 놀라 숨거나 움츠리어 화기가 진압된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강녕전(康寧殿)
왕의 침전(寢殿)으로 사용되던 건물이다. 1920년까지 제 자리에 있었으나 1917년에 일어난 화재로 인하여 불타버린 창덕궁 내전(內殿)을 재건한다는 구실로 일본인들이 헐어 그 부재로 사용하였다. 본래 자리에는 민족항일기에 전국 각지에서 강제로 옳겨놓은 석탑이 배열되어 있을 뿐 주춧돌마저도 남아있지 않다. 규모는 앞면 11칸, 옆면 5칸으로서 왕의 침전임을 상징할 만큼 장대한 크기의 건물이었다. 경복궁 창건 당시인 1395년(태조 4)에 처음 지었다. 이때 건물 이름은 정도전(鄭道傳)이 지었는데,《서경》 홍범편(洪範篇)에서 말한 오복(五福)의 하나로서 강녕을 택한 것이다. 그 내용은 임금으로서 해야 할 이상적인 정치를 논한 것으로 궁궐건축에 반영된 유가(儒家)의 정치이념을 잘 보여준다. 1433년(세종 15)에 고쳐 지었고, 1553년(명종 8)에 불탄 것을 이듬해에 중건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전화로 다시 불타 없어진 것을 1865년 경복궁 중건 때 다시 지었다.
3)교태전
1917년에 불타 없어진 창덕궁 대조전을 짓는다는 구실 아래, 1920년 일본인들에 의해 헐려 대조전의 부재로 사용되었다. 원래 교태전이 있었던 자리에는 석탑·부도(浮圖) 등 민족항일기에 전국에서 강제로 옮겨다놓은 석물들이 배열되어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