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중서]동중서의 우주론과 인성론
- 최초 등록일
- 2006.01.08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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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기원전 213년에 종말을 고한 진을 계승한 나라가 한이었으며 기원전 203년 유방은 군사적으로는 우수하나 정치적으로는 주도하지 못한 자기의 경쟁자들을 전멸시키고 천하를 통일하니 이것이 한에 의한 재통일이다. 유방이 세운 제국을 전한이라 하고 그 후예들이 재통일 함으로서 세운 제국을 후한이라고 하는데 이 두 한제국을 합쳐서 한(기원전 206~서력 220)이라한다.
유가 : 6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법가 위주에다 유가는 그의 보조적인 역할을 했으나 한대에 이르러 역전 되어 한무제 때에는 크게 성행하였다.
시대별로 보면
제 1기 : 고, 혜, 문, 경 4조 60년간은 황로사상이 성행하던 시기로 사상가는 가의(賈誼)라는 인물이다.
제 2기 : 무제로부터 왕망에 이르는 약 60여년간은 유가는 이미 순수 유가가 아니었으며 처음에는 음양오행설 에도 접근하더니 나중에는 참위의 미신에 빠지기도 했다.
그대표적인 사상가는 동중서(董仲舒)(기원전 176~104)이다.
제 3기 : 후한 2백년간에 있어 조정에서 까지 도참설을 믿었으나 일부 유학자들은 반감을 가지고 실제를 추구 했다.
동중서 : 인간이란 천의 일부이므로 인간 행위의 정당성은 천의 운명에 달려 있다고 믿었고 천과 인간 사이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었다고 보고 음양가에서 끌어낸 형이상학적인 이론과 유가의 정치, 사회적인 사상을 한데 결부시켰다.
이러한 그의 시도는 유가의 승리로 나타났고 유가의 승리는 2천여년간 중국 내지 동아시아에서 유가의 절대적인 지위 획득은 물론 정통신앙으로 작용할 수 있게 하였다.
목차
제 1절 진의 천하통일과 법가의 득세
제 2절 한의 재통일과 유가의 부흥
제 3절 동중서의 우주론과 재상문제
제 4절 인성론과 왕의 가르침
제 5절 여러 학설의 혼합과 정치적 사유
본문내용
제 1절 진의 천하통일과 법가의 득세
춘추시대 : 노은공(魯隱公) 원년인 기원전 722년으로부터 노애공(魯哀公) 14년인 기원전 481년에 이르는 242년간을 말한다.
전국시대 : 기워 전 481년으로부터 진시황이 6국을 통일한 기원전 221년에 이르는 약 240년을 말하며 비록 전쟁은 연이어 일어났지만 사람들의 행위는 예에 의해 규제 되었다. 국가도 예에 의해서 다스려 졌으며 국제 관계에서도 예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다. 638년 초(楚)와 송(宋) 두 나라 사이에 있었던 홍(泓)에서의 유명한 전쟁에서도 국제관계의 예(禮) 의 기록을 남기고 있다.
오늘날과 같은 국가 안보 차원에서 국제간의 협력이 논의 되었는데 기원전 551년 이른바 군비 축소회담(양공27년)이 개최되었다. 동쪽에는 제선왕(齊宣王)이 동제가 되고 서쪽에는 진소왕(秦昭王)이 서제가 되었다.
전국 시대에는 종(縱)과 횡(橫) 두 가지 형태로 고착되어 종은 북에서 남으로 횡은 서에서 동으로 동맹을 맺었으며 당시 7국 중 진이 가장 공격적이었고 종적인 형태의 동맹은 6국이 진에 대항하기 위해서였다. 진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영토를 넓혀 6국을 정복하고 마침내 기원전(221)년 전 중국을 통일하기에 이른다.
그는 봉건제를 폐하고 중앙 집권적인 군현제를 세웠다.
참고 자료
동아시아 정치사, 전락희, 단국대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