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진주성 답사
- 최초 등록일
- 2005.11.25
- 최종 저작일
- 2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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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진주성을 직접답사하고 온 뒤에 작성한 답사기 형식의 자료입니다.
많은 참조가 되었으면 하네요^^
목차
I. 진주성을 선택한 이유...
II. 진주성 안내도
III. 진주성에 대해서...
1. 진주성 (사적 제118호)
2. 국립진주박물관
3. 영남포정사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3호)
IV. 역사 관광지 진주성 답사를 마치며...
V. 참고문헌
본문내용
남강을 남쪽으로 끼고 있는 이 성을 촉석성 혹은 진양성이라 부른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의 진주성 전투는 행주산성전투∙한산도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고 한다. 성의 축조연대를 확실하게 알기에는 힘들다고 하는데 예측컨대 옛 삼국시대 때 이곳은 가야 터전으로 그때부터 성이 있었으리라 짐작된다고 하며 뒤에 백제가 이곳을 점령하여 거열성을 쌓았고 또한 신라가 이곳을 빼앗아 거열주라 부르고 만흥산성을 쌓았으니 이곳일 것이라고 전해오고 있다. 축성에 관한 기록은 하륜의 ⌜진주성문기⌟에 고려 우왕 3년(1377)에 왜국를 막기 위해 옛 성터에다가 흙으로 새로 쌓았으나 오래 견디지 못하고 곧 무너졌고 우왕 5년(1379)에 흙을 돌로 바꾸었으나 반도 쌓기 전에 왜구가 무너뜨렸으며, 왜구가 물러난 뒤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경상도 속찬지리지⌟ 진주목조에 태종 원년(1401)에 석축한 것으로 되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성의 규모를 둘레 4,359척(1,356m) 높이 15척(4.7m)정도라 한다. 선조 24년(1591)에 경상도 관찰사 김수에 의해 성의 동남쪽이 확장되었는데, 이로의 ⌜용사일기⌟에 의하면 김 수는 “성의 작음을 탓하여 동남쪽 한 모퉁이를 헐고 물이 괴는 진흙땅까지 물려 새로 쌓았는데 물이 조금만 불어도 곧 찔러 깨무는 듯하였으며 성이 넓고 낮아서 지키기에 어렵다는 것을 식견 있는 사람이면 다 알고 있었다.” 라 하면서 확장 결과 수성에 불리함을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임진왜란 2차 전투때 동문쪽 성곽이 비에 무너져 위기를 맞이한 적이 있고 난 후에 신축할 때 안쪽으로 들여 지었다고 한다. 진주성 안에는 주민들이 거주하고 행정기관도 있었으나, 1970년대 말부터 성안의 주민을 성밖으로 이주시키고 성 안 밖을 공원으로 단장하여 역사의 배움터와 시민의 휴식공원으로 만들었다.
참고 자료
1. 국립진주박물관·소영선, “진주성(한국 제일의 명성)”, 풀빛, 2000
2. 장석훈, “만화 한국사 신문”, 아이세움, 2000
3. 박영규,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들녘, 1996, pp. 239~243.
4. 정동주, “논개”, 한길사, 1998
1. http://www.stone.pe.kr
2. http://jinju.museum.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