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금융론]Triffin Dilemma(유동성 딜레마)
- 최초 등록일
- 2005.11.16
- 최종 저작일
- 20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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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Triffin Dilemma(유동성 딜레마)에 관해 설명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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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브레튼우즈 체제하에서 미국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해야 했는데 그 첫째는 고정가격(금 1온스=35달러)으로 달러화의 금태환을 보장하는 동시에 달러화의 신뢰도를 유지하는 역할이고 두 번째는 준비 통화국으로서의 적정 국제유동성을 공급하는 역할이었다.
여기서 국제유동성이라 함은 대외채권 • 채무관계를 결제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일반적 지불수단을 말한다. 초기의 IMF체제하에서의 국제유동성은 일차적으로 화폐용 금, 교환가능 외국통화, IMF포지션으로 구성 되었다. 그러나 금의 경우에는 금 생산의 미흡 및 일부국가의 편재현상으로 부족하였고 IMF포지션 또한 가맹국의 쿼터증가가 한정되어 있음으로 국제 유동성의 공급은 결국 미국의 국제 수지적자를 통한 달러화 공급 증대로 조달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브래튼우즈체제가 지속되는 기간 동안 달라화가 항상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전후 14년 동안인 1945년부터 1958년까지 유럽 국가들은 전쟁수행으로 인해 정부보유의 국제지불준비자산이 고갈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후복구 사업의 추진으로 달러부족을 겪었다.
이에 대해 미국은 소위 마샬플랜인 유럽부흥 계획을 지원하기 위해 식량을 포함한 생필품과 투자재를 수출함으로써 무역수지흑자를 기록하였다. 1940년대 말에 미국의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무려 GNP의 4%에 이르렀고 그 결과 유럽 국가들은 달러 부족을 겪게 되었다. 특히 이 기간 동안에는 유럽 국가들의 통화교환성이 확립되지 못했는데 1958에야 비로소 교환성이 회복되었다. 그 후 1959년부터 1968년 기간 동안에는 달러 과잉현상이 현재화된 시기로서 그에 따라 국제 유동성도 크게 증가했다.
1960년대에 국제 유동성은 주로 미국의 국제수지 적자를 통한 달러공급으로 조달되었다. 1950년대만 해도 미국의 국제수지 적자는 문제시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미국은 막대한 금보유량을 유지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유럽 국가들의 달러부족으로 미국의 국제수지적자를 환영하는 상태였다. 그러나 1960년대에 미국은 월남 전쟁으로 인한 전비지출과 해외투자증대 등으로 계속적으로 국제 수지적자가 누적되고 여타국들은 달러보유에 대한 불안감을 갖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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