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사]남한과 북한의 통일교육의 현실
- 최초 등록일
- 2005.10.10
- 최종 저작일
- 2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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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남한과 북한의 통일교육의 현실과 그에 따른 해결방안을 제시
정말 잘했어요^^*
학교에서 A+받았거든요^^*
참고 많이 많이 하세요~
목차
없음
본문내용
일제당시 임정에 의해서 구체화 된 바 있는 삼균주의는 근대적 민족의식으로 성장․발전한 홍익인간사상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임정이 겉으로는 ‘민주주의적 새 교육’을 내세우면서 민주주의와 홍익인간사상을 접목시켜 ‘민주적 민족교육’을 하려는 노력을 계속해 왔다. 그러나 홍익인간의 이념을 이 속에서 재해석할 수 있을 만큼 우리의 사상계와 교육계가 충분히 성숙한 것은 아니다.
남한에서는 해방과 동시에 미군정을 실시하면서 11월23일 학무국의 자문기구로 조선교육심의회를 구성하여 민주주의에 토대를 둔 우리나라 교육이념과 제도 및 방향을 합의 ․ 결정하게 하였다. 이 때 교육이념을 맡은 안재홍은 4차 회의 때 교육이념과 교육방침을 보고하였는데 이것은 홍익인간사상에 입각한 교육울 구체화 시킨 것이라 보기 보다는 전반적으로 미국인 아동의 경험을 중시하는 존듀이의 교육관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당시 홍익인간사상이 건국이념은 물론 교육이념에조차 자리 잡을 수 없었던 것은 임정 요원들이 귀국 날짜가 조선교육심의회가 결정된 다음날인 11월 24일인데다가 이들이 평민자격으로 입국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당시 상황이 민족보다 정치가 우세했고, 우리나라가 6.25전쟁으로 분단됨으로써 민족주의자인 조소앙이 여러 가지 민족운동을 남한에서 더 이상 발전시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방된 지 3년만에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수립한 후 교육법을 공포하는데 교육법 제1장 제1조에 우리나라의 교육이 홍익인간의 이념아래 설정된 것임을 명기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것이(홍익인간사상) 미국식 교육의 이상을 드러낸 것이지 한민족의 교육적 이상을 드러낸 것은 아니다. 그나마 홍익인간사상이 교육이념으로 채택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당시 사회집단이 대외명분으로 내세운 이념적 좌표가 민족주의와 민주주의가 거의 동등하였기 때문이고 또한 미군정 하에서 안재홍이 조선교육심의회 교육이념분과 위원장으로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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