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 이효석론
- 최초 등록일
- 2005.05.19
- 최종 저작일
- 20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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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 자료 하나만으로도 이효석 생애의 전반적인 이해와
이효석의 다양한 작품들을 전반적이고도 상세히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목차
이효석론
1. 작가 연보
2. 이효석의 생애
⑴ 출생과 유년시절
⑵ 병과 사
3. 이효석의 생활과 성격
4. 이효석의 문학 세계
⑴ 문학의 세계로 들어선 서울시절-습작기와 동반자 작가시절
① 습작기② 동반자 작가 동반자 작가시절
⑵ 인간과 자연의 탐미 - 경성시절
① 이데올로기를 벗어나 세계로② 심미주의의 세계로
⑶ 순수문학의 세계로
① 자연과 애욕에 대한 탐구② 더 깊은 심미주의의 세계로
⑷ 짧았던 새로운 문학의 세계
① 다시 애정의 세계로② 새로운 문학세계
본문내용
⑴ 출생과 유년시절
1907년 2월23일,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의 본마을 창동리 서남쪽에 있는 성황당을 지나 봉평마을 건너 쭉 빠진 협곡의 마을인데 효석의 생가는이 마을의 중간쯤 되는 우경산밑 이다. 뒷산은 둥그스럼하게 치달린 산으로서 산세가 우악하게 생겨 주변경관을 맑게 한다.
이 산 좌편으로 폭 약80m, 길이 약 900m로 흘러내린 경사진 밭이 완만하게 놓여있다. 생가 앞으로는 작은 들이라고 할 수 있는 비옥한 전답이 펼쳐져 있다. 생가 뒷편 언덕에 는 밤나무 몇그루, 돌배나무 한그루 등이 큰나무로 서 있고 앞마당에는 물푸레나무와 단풍나무가 각 한그루씩 서 있다. 생가 중심으로 우편에 사립문이 있어 마을로 나아가는 길이 있고, 앞마당이을 지나 좌편 측면으로 돌아가면 우물이 있다. 말하자면 이생가는 전형적인 산촌의 반가라 할 수 있어서 운치가 잘 어울린 집이다. 이 집에서 효석은 산촌의 자연을 뼈마디에 새기며 8세에 이르렀다.
1914년 8세때 외학을 하게되어 봉평에서 100리가 떨어진 군 소재지 평창공립보통학교 (현 평창초등학교)에 입학을 하였다. 평창에서는 하숙을 하였는데 봉평집에 다니곤 했다. 이때의 교통수단은 우마차 아니면 도보가 고작이었다. 그러므로 효석은 봉평과 평창 사이 100리를 거의 걸어서 다녔다. 그래서 그 길은 자연 집에서 나와 남안리 마을을 거쳐 봉평천(흥정천)에 다다르고 여기에서는 좌편 강변에 있는 동리 물레방아를 만나게 되고 그 다음은 봉평천 징검다리를 건너 봉평의 성황당을 지나면서 봉평의 본 마을 창동리에 들어와 상가와 주점, 즉 봉평장터 걸리를 뚫고 시내를 빠져나오게 되는데 이중 충주집(훗날 '메밀꽃 필 무렵'의 작품 속에 나오는 주점)이란 주점도 지나왔었다.
봉평시내를 빠져나와서는 장평까지 20리, 노루목고개('메밀꽃 필 무렵' 작품 속에 나오는 고개)를 넘게 되면 장평의 개울(동작품속에 나오는 개울)에 이르며 이 개울을 건너서는 장평 삼거리(한길은 봉평으로 가는길, 한길은 강릉, 하길은 평창길)에 닿게되고 장평에서 대화까지는 30리, 하장평, 재산, 재재(고개이름)를 넘어 신리, 상대화리, 대화로 이어진다.
참고 자료
이효석에 관련된 이효석의 작품 및 관련 자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