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다산초당 기행문
- 최초 등록일
- 2005.05.03
- 최종 저작일
- 2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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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다산초당 기행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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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이번에 학술답사의 형식으로 2박3일로 남도답사를 가게 되었다. 많은 기대를 가지고 간 이번 답사기간 중에서 가장 나의 관심을 끈 것이 있었다면 남도답사 일번지라고 불리는 강진에서 만난 다산 초당이었다. 나에게 다산은 조선시대에 수많은 실학자 중 하나로 경세유표와 목민심서 등을 지어 단지 실학사상의 집대성자 또는 개혁사상가 정도로 기억 될 뿐이었다. 그러나 다산 초당에 들어서자 조선시대 엄격한 실학자의 모습이 아닌 궁핍했던 삶에도 불구하고 자연과 벗삼아 유유자적한 생활을 했던 내가 모르는 다산의 모습을 본 거 같아 다산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다산이 둘째형 약전을 따라 유배를 간지 약 200년이 넘은 지금 다산초당에서 아직도 살아있는 듯한 다산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다산은 비록 유배되어 수도인 한양과 아주 먼 땅 끝까지 오게 되어 그의 정치적 신념을 펼쳐 보일 수는 없었지만 오히려 작은 초당에서 그의 거대한 학문을 꽃 피울 수 있게 된다.
만덕산 귤동 마을에 터를 잡고 사는 해남 윤씨 집안의 도움으로 다산 초당에서 생활했던 정약용은 모친이 해남 윤씨로 어부 사시사, 오우가 등을 지으며 조선시대 삼대가인으로 불렸던 고산 윤선도가 그의 조상이 된다. 아마 다산이 초당에서 유유자적한 생활을 했던 것은 윤선도에게서 풍유를 즐기는 모습을 물려받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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