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예술의 이해] 세계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화유산
- 최초 등록일
- 2004.12.21
- 최종 저작일
- 20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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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ppt자료입니다. 참고가 많이 되시길 바랍니다.
목차
세계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화유산
세계문화유산 - 아시아편(창덕궁)
세계문화유산 - 세계편(중국 이화원)
본문내용
창건배경 (1)
1392년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후, 1394년에 한양을 도읍지로 정하고 경복궁을 중건한다. 그러나 새 왕조의 주도권을 놓고 왕조 개창의 주역들 사이에서 다툼이 일어났다. 이른 바 '제1차 왕자의 난'은 왕자들 사이의 대립이기 보다는 이방원과 정도전의 대결이 폭발한 것이었다. 이방원은 개경에서 자신과 경쟁관계에 있던 형 방간을 제거하는 이른 바 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세자가 되었다. 세자가 된 이방원은 실질적인 권한을 장악하고, 부왕 태조와의 관계를 개선하는 등 정지 작업을 한끝에 1400년 11월 결국 정종에게서 왕위를 넘겨받았으니 이가 태종이다.
창건배경 (2)
태종은 즉위하면서 바로 태조의 뜻을 받들어 한양으로 재천도를 강력하게 추진 하였다. 그러나 신료들의 반대도 만만하지 않았다. 태종은 종묘에 들어가서 세 후보지 , 곧 개경, 한양, 무악의 길흉을 점쳐 정할 것이니 결정된 뒤에는 이의를 달지 말라고 뒷다짐을 하고 측근 다섯사람만을 데리고 종묘에 들어가 동전을 던져 점을 쳤다. 한양이 2길 1흉, 개경과 무악이 모두 1길 2흉이었다. 태종은 의논이 정해졌다고 발표하였다.
창건배경 (3)
종묘에서 점을 치겠다고 한 것, 점치는 방법으로 돈을 던지는 것을 택한 것, 점의 결과가 한양이 길한 것으로 나온 것 모두가 우연이 아니라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부왕 태조와 그리고 자신의 몇몇 측근들과 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경복궁이 엄연히 있는데도 새로 이궁을 짓도록 한 태종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경복궁은 태종 자신이 정적 정도전과 이복 동생들을 죽였던 현장이다. 될 수 있으면 덮어두고 싶은 과거를 자꾸 일깨우는 경복궁으로 임어 하는 것은 태종으로서는 달가운 일일 수가 없다고 생각된다.
참고 자료
참고사이트
http://www.duokorea.com/duokorea/duo-tourchina/cn99/cn99-994.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