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한국 무속과 타종교와의 습합(싱크레리즘)
- 최초 등록일
- 2004.12.20
- 최종 저작일
- 2004.08
- 5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매우 난해한 주제를 갖고 신경써서 쓴 보고서입니다.
해당 각주와 부연설명이 되어있어 보고서 제출하면 교수님들이 좋아하실겁니다.자신합니다.
목차
1. 서
2. 내용
3. 결
본문내용
1. 서
한국무속과 타종교와의 습합이란 주제에 관해서 도서관의 자료들과 인터넷을 찾아본 결과 과제를 내주신 만큼 중요하지만 무척이나 찾기가 어려웠다. 사실 자료를 검색하고 읽어 내려가면서 어쩌면 교수님의 의도와는 거리가 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2. 내용
한국의 무교는 19세기까지 중요한 지위를 점한다. 무당은 가정에서는 물론 궁중의 중요행사에도 참여하였고 불교 승려는 물론 성리학자들도 겉으로는 廢巫(폐무)라는 입장을 취했지만 사실상 귀신이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 고대의 무교는 결국 불교에 흡수되어 불교화 과정을 거친 뒤 자신의 분명한 정체성을 잃었다고 하는데 사실상의 무교는 단군으로부터 출발되었다. 사제는 제천자이며 예언자로서의 역할도 하였고 醫巫(의무)가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삼국시대에는 지배계급에서도 무속에 깊이 젖어있었다는 증거가 많고 고려시대에는 무속이 광범위하게 생활에 적용된 시대이다. 심지어 병이 나도 약을 쓸 생각을 하지 않고 무당을 불러 굿을 하였다고 한다. 이씨 조선 사회에서도 무속의 경향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조선시대 무격의 수효가 1517명이라고 했다. 김승동 교수에 의하면 순조 때(1801-1834)의 1517명의 무격은 경상도 522, 전라도 415, 경중 181, 함남 129, 경기도 32, 강원도 62명이다.
김태곤에 의하면 무당 가운데 하계에서 나오는 악한 흑 샤먼은 많은 사람이 무서워하게 되었고, 선의 무당인 백 무당도 때로는 해를 끼칠 수 있다고 하는데 김승동, 전게서, p23.
개화기에 와서 서양 의락을 위주로 하는 광혜원이 설립되자 의무는 빛을 잃었고, 과학이 점보다 정확하니 점복무도 직분을 잃었으며 무교 신사가 폐지됨에 따라 사제무도 할 일이 없게 되는 등 세태의 변화로 인해 무교는 한국 사회에서 차츰 자취를 감추고 음성화된 것이다.
참고 자료
한국종교역사학, 연세대 출판부
여타 수많은 자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