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향안으로 보는 양반의 특징
- 최초 등록일
- 2004.11.05
- 최종 저작일
- 2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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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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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향안을 통한 양반
1. 향안의 등장 배경
2. 향안의 등장
Ⅲ. 향안의 변화
Ⅳ.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양반이란 말은 국왕을 중심으로 문반(文班)은 동쪽에, 무반(武班)은 서쪽에 섰는데, 이 두 반열을 양반이라고 하였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 1392년(태조 1) 문무산계가 제정 실시되고, 1436년(세종 18) 무산계에도 정종(正從) 9품이 제정되면서 문무산계가 갖추어져, 《경국대전》에서 성문화되었다.
이때부터 문무반이라는 양반개념이 제도적으로 확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개념은 관료체제가 정비됨에 따라 문무반직을 가진 사람뿐만 아니라 그 가족과 가문(家門)까지도 이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러한 추세는 음직(蔭職)과 과거(科擧)를 통한 관직의 세전(世傳) 및 폐쇄적인 혼인관계를 통하여 심화되었다. 이리하여 문ㆍ무반을 뜻하던 양반의 개념은 지배신분층을 뜻하는 개념으로 바뀌게 되었다.
Ⅱ. 향안을 통한 양반
1. 향안의 등장 배경
조선 초 중앙의 정치 지배세력이 당면했던 문제의 하나는 지방통치에 있어 재지세력의 횡포로부터 수령(守令)으로 대표되는 중앙집권적 권위의 확보와, 수령의 횡포로부터 민생의 안정을 기하는 사이에서 합리적인 균형을 찾는 것이었다. 조선초기에는 중앙에서 확보하고자 했던 일원적인 관을 통한 행정적 질서는 재지세력들의 유향소와 대립되고 있었다. 유향소의 혁파(태종6년)15)「수령고소금지법(守令告訴禁止法)」의 제정(세종 2년 9월)등은 이런 질서를 확보하고자 한 조치였다.
참고 자료
한국고문서학회 엮음, {조선시대 생활사}, 역사비평사 1996
변태섭, {한국사통론}, 삼영사, 2003
전북대학교 박물관, {兩班層의 生活相을 엿볼 수 있는 各種 遺品}, 전북대학교박물관, 1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