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머리말
Ⅱ. 저자 김상연과『정선만국사』
Ⅲ. 『정선만국사』의 근세사 구성과 체재
Ⅳ. 『정선만국사』의 근세사 서술 내용
Ⅴ. 맺음말
본문내용
역사교육에 발을 내딛고 이 분야를 탐색하면서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교과서 내용 분석 연구였다. 역사학에서 출발한 풋내기 연구자의 눈으로는 교과서 내용과 서술이 정확한지, 어떤 내용이 얼마만큼의 분량으로 서술되었는지, 교과서가 특정 시기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또 최근 학계의 성과와 동향은 얼마나 반영되어 있는지를 분석하는 수많은 연구들의 의의와 효용을 찾기 힘들었다. 그렇게 많은 지적과 제언에도 여전히 현 시점에서 오류투성이라는 연구결과들은 그 회의감을 더하게 했다. 도대체 왜?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아니면 이제 선행 연구들로 인한 관성이 되어 맹목적으로 따라하는 연구 템플릿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이 외침과도 같은 질문들은 앞으로 애정을 갖고 천착해보면서 나름의 답을 찾아야 할 문제인 듯하다. 무수한 연구들 위에 무의미한 하나의 축적이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아직도 저항과 망설임이 있지만 오히려 이 고민들이 유의미한 성찰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동기로 삼아 이 글을 시작한다. 이 글에서 집중하여 살펴볼 교과서는 1906년에 간행된 세계사 교과서이다. 즉, 학습교재로서의 역할과 임무는 종결된 ‘사료’로서의 지위를 갖고 있다.
1895~1910년 사이에 역사교과를 위해 편찬된 교과서들이 갖는 의의는 다른 어느 시기보다 특별하다. 그 이유는 조선 후기에 저술된 실학사서 이후의 역사편찬은 1895년의 관찬 교과서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역사교과서는 사서가 되어야 한다”는 오늘날의 지적에 대한 선취가 될 수도 있겠다. 임병철, 「2011 중・고교 역사교과서의 서양 전근대사 서술에 관한 분석」, 『역사연구』 15, 2012, p.241.
일반적으로 사서는 그 시대의 인식 및 사상과 밀접한 관련 속에서 저술된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이 시기에 편찬된 역사교과서들은 시대적 산물이자 당대의 역사인식을 담아낸 결정체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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