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생태운동
- 최초 등록일
- 2023.07.05
- 최종 저작일
- 20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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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생태운동의 역사와 발전
2. 생태운동과 변화의 중심. 프라이부르크
3. 프라이부르크와 다른 도시 사례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
4.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생태운동의 역사와 발전
1) 생태운동의 탄생 배경 – 산업화와 도시화
19세기 중반에 들어서야 본격화 된 독일의 산업화는 그들의 생황방식을 급격하게 바꾸어 놓았다. 도시 인구가 급증하여 물품의 수요가 증가하고, 이에 따라 생산방식 또한 대량생산체계로 바뀌었다. 농업에서는 수확을 증대하기 위해 화학비료의 사용이 증가했다. 도시는 자연스레 공원과 나무가 사라졌고, 하수처리시설이나 폐기물 처리시설 등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공장에서 나오는 매연과 폐수, 소음으로 인하여 환경오염이 발생했다. 뿐만 아니라 도시와 시골을 연결하기 위해 새로운 도로와 철도를 건설하였고, 목재를 충당하기 위해 성장이 빠른 나무들을 심었다. 자신들의 주변에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아름답게 존재하던 기존의 자연경관이 지옥과도 같이 바뀐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저항하기 위해 19세기 후반에 지식인들이 환경보호를 외치며 결집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 일어났던 고향보호운동, 자연보호운동, 생활개혁운동을 제1차 환경보호운동이라 한다.
2) 제1차 환경보호운동 – 고향과 자연, 생활개혁
19세기 후반에 고향은 거의 신화적인 개념이 되었다. 산업화가 가속되고 발전에 대한 믿음이 강해짐에 따라 그에 반발하는 힘 역시 강하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기부터 자연보호가 조직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 당시 자연보호운동은 낭만주의 정신에 근거했다. 그들에게 자연은 산업에 대립되며 본질 그대로를 뜻했다. 동시에 신비스런 생명체이고 인간과 소통하는 살아 있는 주체였다. 따라서 이 당시에 탄생한 환경단체들은 이러한 자연정신에 입각하여 산업화와 문명화 자체에 대한 저항운동을 펼쳤으며 자연보호라는 개념을 확산시켰다.
이러한 고향과 자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나타난 고향보호운동은 1904년 ‘고향보호연맹’ 창립을 촉진시켰고, 이 연맹의 핵심은 근대화로부터 민족의 가치를 보존하고 보호하는 것이었다. 요컨대 고향보호운동은 지역의 토속적인 풍습과 양식 및 민속축제와 전통의상의 보존, 토종 동·식물의 보존, 아름다운 자연경관의 보존 등에 중점을 두었다. 그러나 기존문화의 보존운동 등의 소극적인 방법으로는 더 이상 산업화의 물결을 막아내기란 불가능했고, 고향보호운동은 십여 년 이상 지속되다 점차 사라져 갔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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