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이후 한중일 건축의 장식성 강화 레포트
- 최초 등록일
- 2023.07.01
- 최종 저작일
- 20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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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6세기 이후 한중일 건축의 장식성 강화 레포트"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서론
1) 16 세기 삼국의 상황
2. 본론
1) 한국건축의 장식 변화
2) 중국건축의 장식 변화
3) 일본건축의 장식 변화
3. 결론
1) 한·중·일건축의 16세기 이후 장식성 강화
2) 16세기 장식성 강화에 관한 고찰
4.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서론
-16 세기 삼국의 상황
표는 한·중·일의 역사 연대표이다. 표를 보면 16세기에 한국은 조선 초기였고 중종과 선조가 집권하는 시기였다. 중국은 명대였으며 만력제가 집권하고 있었고, 일본은 실정~ 도산 시대였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집권하던 시기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은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피폐했고 수많은 건축물이 소실되어 국가 재건이 중요한 문제였다. 명나라는 국력이 쇠퇴해 서서히 망해가는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고, 이에 반해 일본은 전 국 시대를 거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성장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통일시키면서 전성 기를 겪는 시기였다. 이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건축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특히 한·중·일 건축의 장식성 강화에 관한 내용을 중점적으로 살펴보려 한다.
2. 본론
-한국건축의 장식 변화
중국과 일본은 후대에 들어서 시공상 간편한 쪽을 택하게 되었고, 따라서 처마 본래의 아름다움을 포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은 처마 곡선의 아름다움을 고수해나갔다. 이에 대한 근거로는 궁궐이나 사찰 건축이 처마 곡선을 살리기 위해 신경 쓴 것뿐만 아 니라 일반 주택에서도 그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조선 시대의 하회 마을이나 양동마을을 보면 유려한 곡선을 살린 처마로 장식된 기와집을 볼 수 있다.
한국은 16세기 이후에 처마의 장식에 대해서 상당히 신경을 썼음을 알아보았는데, 이시기에서 처마의 장식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인 왕이 있었다. 17세기 초 광해군은 15년 의 재위 기간에 창덕궁, 창경궁을 복원하고 인경군, 경덕궁을 지었다. 단순히 궁궐을 많 이 지은 것이 아니라 건축 기술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는데, 제작 비용이 너무 많이 들 어서 잘 쓰이지 않는 청기와를 인경궁의 주요 전각을 모두 덮게 했다. 청기와는 지금 창 덕궁 선정전에 유일하게 남아있다.
참고 자료
김동욱(2015), 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 : 동아시아 속 우리건축 이야기, 김영사
권영걸(2005), 한중일의 공간조영 : 우리의 공간유전자를 찾아서, 도서출판 국제
조은경(2017), 조선중기 사찰건축의 변화
장헌덕(2011), 중국 목조건축의 하앙 결구기법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