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윤치호의 행적과 사상
- 최초 등록일
- 2004.06.04
- 최종 저작일
- 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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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윤치호, 그는 누구인가
윤치호의 일생과 행적
민족주의 사상가로서의 업적과 활동
105인 사건과 윤치호
윤치호, 친일의 대열에서
<윤치호 일기>의 사상 고찰
윤치호의 내면으로 떠나는 여행 (<윤치호 일기> 중에서)
회색인 윤치호, 친일인가?
본문내용
윤치호, 그는 누구인가
서재필과 함께 독립협회를 창립하고 대한 자강회의 회장을 지냈던 민족독립운동가 윤치호. 격정의 세월 속에서 그가 맞이한 현실과 이상의 혼란으로 사상적 변화를 밟게 된 그의 행적과 뒷모습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당대 최고 지식인이라 불리우는 민족의 우상에서 친일파란 낙인을 받게 된 계기가 무엇이였으며, 어떻게 그와 같은 모습으로 한국 근현대사에 남게 되었는지 앞으로 살펴보게 된다.
윤치호의 일생과 행적
1865년(고종 2년) 1월 23일, 충남 아산군 둔포면 신항리에서 판서 윤웅렬의 맏아들로 태어나 17세의 가장 어린나이로 ꡐ신사유람단ꡑ에 포함되어 일본으로 파견가게 된다. 뛰어나고 명석한 두뇌를 가져 일찌감치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고, 영사관 서기관으로부터 5개월의 단기간에 영어를 배우게 된다. 이듬에 조국으로 돌아온 그는 미국의 초대 주한 공사 푸트 장군의 통역을 맡고 고종을 보필하게 되나, 따르던 김옥균과 서재필의 갑신정변이 3일만에 종식되자 상해로 망명을 떠나게 된다. 상투를 자르고 양복을 차려입은 그는 기독교의 신앙을 갖고 최초의 남감리교인이 되었다. 이후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청일전쟁이 일어나 개화당이 정치에 복귀하여 칼바람을 일으키자 친노파 일원들이 황제를 러시아로 옹립하는 아관파천까지 일어나는 대혼란이 일어난다.
참고 자료
윤치호, 1988, <윤치호 일기>, 김상태 편역 역사비평사
좌옹 윤치호 문화사업회편, 1998, <윤치호의 생애와 사상>, 을유문화사
좌옹 윤치호 문화사업 위원회, 1999, <좌옹 윤치호 선생 약전>
임종국, 1994, <실록 친일파>, 돌베개
김삼웅 외2, 1992, <친일파 그 인간과 논리>, 학민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