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설교문 예시 <창세기> 3
- 최초 등록일
- 2023.06.20
- 최종 저작일
- 20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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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설교문 예시 <창세기> 3"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설교문 예시 <창세기> 3
2. <창세기> 묵상 3. 사랑은 왜 아픈가
본문내용
8 그 날 저녁, 날이 서늘할 때에 아담과 그의 아내는 여호와 하나님이 동산에서 거니시는 소리를 듣고 그분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
9 그때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불러 물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창 3:8,9)
어느 사회나 존재하는 것이 금기와 터부입니다. 하지 말아야할 것의 목록이 보이지 않게 집단에게 전승되는 거죠. 이런 금기에 대한 다양한 시선이 있을 겁니다. 제가 아는 하나는 종교철학적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신학적 관점입니다. 철학자 조르주 바타유는 금기가 죄로 이끈다고 했습니다. 금기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사람들이 죄를 짓는다는 것이죠. 금기 자체가 죄에 대한 매력적 통로가 된다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로마서 7장 7,8절을 금기의 관점에서 이렇게 해석하죠.
그러면 율법이 죄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율법이 없었다면 내가 죄를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만일 율법이 “탐내지 말아라”하고 말하지 않았다면 탐욕이 무엇인지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가 계명으로 기회를 틈타서 내 속에 온갖 탐심을 일으켜 놓았습니다.
이렇게 “죄가 계명으로 기회를 틈타서”라는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십계명 중에 열 번째 계명을 중요하게 생각하죠. 살인, 간음, 도적질보다 근원적인 죄가 탐욕이라는 겁니다. 이런 관점을 무조건 부정할 수만은 없는 게 안식일준수에 예민한 사람도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보면 탐욕의 문제에서는 자유롭지 않더라는 거지요. 반면에 어떤 신학적 관점은 선악과는 그저 죄를 드러내는 수단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이건 익숙한 내용이라 굳이 설명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금기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의와 죄에 대한 접근방식도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선악과는 죄를 짓도록 하는 것인가? 아니면 맘속의 죄를 보여주는 것인가요? 질문은 또 있죠. 죄는 사기꾼의 문제인가? 피해자의 문제인가 하는 거지요.
참고 자료
https://ko.wikipedia.org/wiki/%EC%A0%9C%EC%B9%A0%EC%9D%BC%EC%95%88%EC%8B%9D%EC%9D%BC%EC%98%88%EC%88%98%EC%9E%AC%EB%A6%BC%EA%B5%90%ED%9A%8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