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산 김창숙평전
- 최초 등록일
- 2022.05.07
- 최종 저작일
- 20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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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어가며
2. 심산 김창숙의 생애
3. 국권회복운동과 파리장서 활동
4. 김창숙의 망명 후의 운동
5. 나가며(김창숙에 대한 평가)
참고문헌
본문내용
1. 들어가며
심산 김창숙은 조선이 개항하고 나서 3년 뒤인 1879년에 태어나 숨을 거둘 때까지 한국의 근현대사를 모두 겪으며 파란 만장한 삶을 보냈다.
그는 구한 말 애국계몽운동을 시작으로 국권 회복 운동, 항일 민족 독립운동, 반분단 통일운동, 반독재 민주 투쟁에 온몸을 바쳤다. 그는 강직한 지조와 성품으로 침략과 불의와 독재라는 한국 근현대사를 행동주의로 살아갔다.
그는 독립 운동을 위해 군자금을 모집하던 중에 일제에 체포된 후 혹독한 고문으로 두 다리가 마비되어 하반신이 불구가 되었어도 전혀 흔들림 없이 자신의 의지를 실천하였다.
그는 독립을 위해 대·내외적으로 많은 활동을 하였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김창숙에 대한 것은 해방이 후의 이승만의 독재에 반대하고 항거한 정치가이기 때문에 그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2. 심산 김창숙의 생애
김창숙(1879-1962)은 경상북도 성주 출신으로 본관은 의성, 자는 문좌, 호는 심산·벽옹이다. 그는 조선왕조가 자본주의 세계 체제에 편입되는 계기가 되는 개항 3년 후인 1879년 7월 10일 선조 때의 정승 김우옹의 12대손 칠봉 김호림과 인동장씨 부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김창숙 자신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여섯 살에 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종일토록 책을 펴보지 않아도 능히 오래도록 기억하였으며, 여덟 살 때 소학을 읽었으나 오직 나가 놀기만 힘쓰고 일을 귀찮게 여겼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부친이 그가 열 살 되던 해에 동리의 어른에게 나아가 가르침을 받게 하였으나 여기서도 항상 방탕한 아이들과 놀았다고 한다. 김호림이 자식의 앞날을 염려하여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이승희에게 각별한 지도를 부탁하였으나, 김창숙 자신이 경전에 대한 공부와 성리학설에 별로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이승희 문하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나 김창숙은 열여덟이 되는 1896년에 부친 김호림이 세상을 떠나고 상기를 마치면서, 어머니의 훈계를 계기로 ......<중 략>
참고 자료
권기훈, 「심산 김창숙연구」, 선인,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