슐라이허마허 교회론
- 최초 등록일
- 2022.04.12
- 최종 저작일
- 20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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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슐라이허마허 교회론"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I. 들어가는 말
II. “네 번째 강연”의 집필 과정의 재구성
III. 종교론 내에 “네 번째 강연”을 위한 슐라이어마허의 은밀한 해석학
IV. 슐라이어마허의 독일 국가 교회 비판
V. 모든 구성원들이 자유로운 “공동체적 교회”와 “가정 교회”
VI. 나가는 말
본문내용
I. 들어가는 말
① 슐라이어마허는 현대 기독교 교회론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쳤지만 이제까지 특별히 주목을 받지 못해 왔다.
② 슐라이어마허 당시 독일 기독교는 국가종교였다. 18세기 후반 독일 국가종교를 유지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1788년부터 강화되기 시작했던 언론 및 출판 검열이었다. 슐라이어마허는 국가종교를 반대했다. '종교론'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슐라이어마허는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검열을 통과하지 못할 것을 깨닫고 외적으로 국가종교인 기독교를 절대적으로 우월한 종교라고 찬양하는 듯하였으나, 내적으로 낭만주의적 보편주의적 종교를 주장함으로 '종교론'을 출판할 수 있었다.
③ 슐라이어마허의 교회론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곳은 '종교론'에서 “종교의 사회성에 대하여 혹은 교회와 성직에 대하여”란 제목의 “네 번째 강연”이다. 슐라이어마허가 “종교”라고 불렀던 것은 당시 독일 국가종교가 아니라 자유로운 낭만주의적 보편적인 종교라는 맥락 속에서 그의 교회론을 “종교의 사회적 관계”란 의미를 추적해 가면서 밝히기로 한다.
II. “네 번째 강연”의 집필 과정의 재구성
① 슐라이어마허는 해석학에서 글의 집필 과정을 재구성하는 것이 해석에 도움이 된다고
하였다. 이것은 출판된 서적의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배후의 사건들을 아는 것이 해석에 도움
이 된다는 의미도 포함할 것이다. 1798년 후반기부터 '종교론'을 집필하기 시작한 슐라이어마허는 그의 낭만주의 친구인 헨리에테 헤르츠(Henriette)에게 '종교론'의 원고를 보냈으며, 그녀는 그것을 다시 그들 모두의 친구인 슐레겔(Friedrich Schlegel)에게 전했고, 그것은 다시 검열관 인 자크(F. S. G. Sack)에게 넘겨졌다. 슐라이어마허는 '종교론'의 집필 과정 내내 헨리에테헤르츠와 프리드리히 슐레겔의 의견뿐만 아니라 검열관의 판단도 고려하여 자신의 책을 구성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