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 화폐의 발전
- 최초 등록일
- 2021.07.26
- 최종 저작일
- 20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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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금속 화폐의 발전"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금속 화폐의 정의
1) 금속 화폐란?
2) 조선 시대 이전의 금속 화폐
① 건원중보에 관하여
② 은병에 관하여
2. 금속 화폐 유통의 추진 배경과 그 영향
1) 금속 화폐 유통의 배경
2) 17세기 전반 동전 유통의 시작
3) 17세기 후반 숙종 시기의 동전 유통 정책
4) 18세기 초반 영조 시기의 동전 유통 정책
5) 18세기 초반 - 19세기 중엽 동전 유통의 확대
3. 민간의 금속 화폐 이용
1) 민간의 금속 화폐 이용 사례
4. 금속 화폐의 한계와 의의
1) 금속 화폐의 한계
① 전황에 관하여
② 갑리에 관하여
2) 금속 화폐의 의의
5.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금속 화폐의 정의
1) 금속 화폐란?
금속 화폐란 귀금속 자체 혹은 귀금속으로 주조된 화폐로 전자의 경우를 청량화폐(秤量貨幣), 후자의 경우를 주조화폐(鑄造貨幣)라고 한다. 물물교환 경제에서 화폐로 사용된 가축, 곡물, 고재, 피혁 등과 같은 물품 화폐와 비교하여 금속 화폐는 소액 거래를 위한 세분화가 가능하며, 주조 기술의 발달에 따른 표준화가 가능하고, 강한 내구성과 편리한 휴대 등의 특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귀금속을 화폐로 사용하는 만큼 주조와 유통에 따른 비용이 발생하게 되며, 귀금속의 채광량과 제련 기술 등의 요인으로 인해 화폐의 공급에 제한이 생길 수 있다는 단점 또한 가지고 있다.
2) 조선 시대 이전의 금속 화폐
한국에서 출토된 가장 오래된 금속화폐는 기원전 6세기의 명도전(明刀錢)으로 이는 중국 북쪽에 있던 연(燕)나라에서 만든 금속 화폐로, 연나라와의 교역관계를 보여주는 증거물이라고 할 수 있다. 현존하는 문헌 기록에 따르면, 고려 성종 15년(996)에 최초로 추포(품질 나쁜 베)의 사용을 금지하고 철전(鐵錢)을 유통시키고자 건원중보(乾元重寶)를 발행했다. 그러나 백성들이 철전의 유통을 불편하게 여겼기 때문에 베와 곡물을 계속 사용하도록 정책을 바꿔야 했다. 그러다가 고려 숙종 2년(1097)에 주전도감을 설치하면서 금속 화폐가 다시 등장하였는데, 이때는 은을 원료로 병처럼 생긴 은병을 주조해 유통시켰다. 은 자체의 가치를 이용한 이 은화는 최하 쌀 10석에서 최고 50석의 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대규모 거래에만 적합했다.
이로 인해 은화보다 가치가 떨어지는 동화(銅貨)가 등장하게 되었다. 동화는 고려 숙종 7년(1102)에 1만 5천관을 주조하여 국가가 독점하는 좌우주점(左右酒店)을 통해 유통시킴으로써 첫 선을 보였다. 그러나 고려 시대의 화폐 유통을 위한 몇 가지 시도들은 결국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교환 수단은 다시 베와 쌀로 회귀했다. 화폐 유통에는 농업 생산력의 발달에 따른 상업의 발달이 필수적인데 아직 그런 단계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던 것이다. 13세기에는 고려가 몽골의 속국이 되면서 원나라 화폐인 저화(楮貨)가 유통되기도 했다. 저화는 종이로 만든 지폐로 화폐의 발행 권한을 가진 정부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화폐였다.
참고 자료
「대원군 집권기 당백전 주조 유통의 배경과 영향』, 서울: 하현강 교수 정년 기념 총간행 위원회, 2000.
『한국사의 구조와 전개 -하현강 교수 정년 기념 논총-』, 서울: 하현강 교수 정년 기념 총간행 위원회, 2000.
『조선 후기 화폐사 연구』(한국 연구원, 1975)
「조선 후기 화폐 경제 발달과 그 영향」, 『조선후기 사회 경제사 연구 입문』, (민족 문화사, 1991)
「17ㆍ18세기 전반 급납조세의 성립과 전개」, (연세대 국학 연구원, 1984)
『동방학지』45, (연세대 국학 연구원, 1984)
『조선후기 상업 자본의 발달』, (고려대 출판부, 19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