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유민의 보호(유민발생의 원인, 유민의 영향)
- 최초 등록일
- 2020.07.07
- 최종 저작일
- 20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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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유민발생의 원인
1. 과세과중
2. 재해
3. 전란
II. 유민의 영향
본문내용
I. 유민발생의 원인
1/ 과세과중(課稅過重)
고려시대의 유민은 문종(10471082) 때부터 발생하기 시작했는데 문신귀족 전성기 말기로부터 현저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예종(1106~1122) 때에도 부역의 과중으로 유망민의 수는 증대되었는데, 예종 원년(1106)의 교서를 보면 이때 지방관리 중에 탐관오리가 얼마나 많았고 또 이로 인한 유망민의 속출로 농촌사회의 붕괴가 어떠하였던가를 알 수 있다. 특히 십실구공(十室九空)이라는 표현은 당시 농촌사회의 공허상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하겠다. 또한 같은 해의 "서해도의 안악, 장연 등지에도 인물의 유망(流亡)이 많은 까닭에 감무관(監務官)을 보내어 활동하게 하였던 바 그 성적이 양호하였다"는 기록을 보면 감무관은 유민들을 다시 불러들여 생업을 안정시키는 임무를 가졌던 것으로 예종 원년(1106)에 처음으로 두기 시작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과 후 의종 24년(1170)에 정중부의 난을 통한 계속된 무인 상호간의 쟁탈전이 감행됨에 따라 농민들은 그들의 폭정에 시달렸다. 이 무질서한 혼란과 무신들의 수탈행위는 농촌 자체 내의 불안을 가져와 유민들을 양산시켰으나 이때의 유민들은 지나치게 먼 타향이나 국외로 도피한 것은 아니었다.
고려시대 말기에 와서는 전란으로 인한 인적 자원의 감축과 국가재원의 고갈이 극심하였고 몽고의 수탈과 징발된 물량이 막대하여 국가 재정적 위기의 타개가 불가능한 사태에 처하게 되었다.
이러한 적자 위기의 재정경제는 자연적으로 고율의 징세와 수탈, 임시부가세의 신설 및 강압 등의 편법을 사용하게 하였으며 이로 인한 유민들의 수는 점점 증가하였다.
따라서 유민들의 수적인 증가는 고려 말의 농업생산 면에 지대한 영향을 초래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충분히 알 수 있으며 특히 유망의 시기는 충렬왕(1275-1308) 때 최고조에 달하였다. 이들 자영농민은 생존을 위해서는 권문세도가나 장원들의 신하로 투입되는 것이 유일한 해결방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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