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데카르트의 성찰
- 최초 등록일
- 2020.01.03
- 최종 저작일
- 2020.01
- 8페이지/ 어도비 PDF
- 가격 2,500원
* 본 문서는 PDF문서형식으로 복사 및 편집이 불가합니다.
소개글
"르네데카르트의 성찰"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1596년 3월 31일, 현재는 그의 이름을 따 데카르트로 지명을 바꾼 프랑스 중서부 투렌의 라 에이에서 조아킴 데카르트(Joachim Descartes)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생후 일년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예수회가 운영하는 학교에서 고전어, 수사학, 철학, 물리 등 을 공부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당시는 “우주는 무한”이라고 말한 브루노(Giordano Bruno) 가 화형당하는 한편, 갈릴레이(Galileo Galilei)가 천체망원경으로 목성의 위성을 발견하는 등 중세의 기독교적 도그마와 근대과학의 희미한 서막이 공존하는 때였다. 데카르트는 프아티에 대학에 입학해 법학사 학위를 받았지만, ‘세상이라는 큰 책’을 배우고자 여행길에 올랐다.
23살이 되던 해 그는 놀라운 학문의 기초를 직관하도록 한 세 가지 꿈을 꾸고 나서 지혜를 추구하며 보편학을 정립할 것을 삶의 목표로 삼게 되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정신지도규칙(Regulae ad directionem ingenii)》을 집필했고, 그가 쓴 최 초의 철학서라 할 수 있는 《방법서설(Discours de la methode)》을 비롯해 《성찰 (Meditationes de prima philosophia)》, 《철학의 원리(Principia philosophiae)》 등을 차례 로 내놓았다.
1643년 데카르트를 사숙(私淑)했던 엘리자베스 왕녀와 서신을 주고받기 시작했으며, 2년 후 그녀의 요청으로 《정념론》을 집필하기 시작해 1649년 책이 출간되기에 이른다. 평소 몸이 약 해 아침 늦게까지 잠을 자는 습관이 있었는데, 매일 이른 아침 만나 대화하길 요청하는 스웨 덴 여왕 크리스틴으로 인해 면역 체계에 문제가 생겨 이듬해 폐렴에 걸려 사망한 것으로 추정 된다.
끊임없는 의심으로 도달할 수 있는 명증한 진리를 모든 학문의 시작으로 보았으며, 사유의 확 신자를 신에게서 인간으로 옮겨놓음으로써 근대의 철학적 주체를 확립했다는 점에서 철학사에 큰 획을 그은 위대한 사상가로 평가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