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대동아공영권의 기원: 아시아연대론
Ⅱ. 대동아공영권 구상의 구체화: 대동합방론
Ⅲ. 대동아공영권 구상의 실천: 한일합방
Ⅳ. 대동아공영권의 확장: 아시아 주의에서 대동아공영권으로
본문내용
Ⅰ. 대동아공영권의 기원: 아시아연대론
아시아의 독립과 번영을 주장한 초기 대동아공영권구상은 일본제국주의의 아시아 침략을 합리화하기 위한 정치 슬로건으로 출발하였다. 그 후 중일전쟁의 장기화에 대한 하나의 돌파구로 독일 지정학의 ‘생활권’(Lebensraum)이론을 수용하여 침략주의 이념으로 발전하였다. 또한 대동아공영권 구상은 선린우호(善隣友好)·공동방공(共同防共)을 위해 일만지(日滿支) 3국을 중심으로 인도, 미얀마, 타이, 말레이시아, 보르네오,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네덜란드령 동인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를 포함하는 전시국가독점자본의 배타적인 블록 경제체제를 목표로 하였다. 대동아공영권 구상이 “지리적, 운명적인 연대”를 기초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아시아연대론에 기원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중 략>
Ⅱ. 대동아공영권 구상의 구체화: 대동합방론
다루이 도키치의 ‘대동합방론’은 후쿠자와의 ‘탈아론’에 대비되는 아시아연대론의 구체적 형태로 평가할 수 있다. 대동합방론의 초고는 1885년에 완성되었지만, 다루이의 투옥에 의해 분실되어 출판은 1893년 8월에 이루어졌다. 이 시기는 동북아시아의 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가던 시기이기도 했다. 즉 갑신정변과 청일전쟁을 눈앞에 둔 시점이었으며, 이는 대동합방론을 간행한 다루이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또한 한일근대사를 100년 정도 후퇴시킨 조선병합이 실행되기 1개월 전인 1910년 7월에 재차 출판된 바 있다. 본서는 전부가 한문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조선이나 청국의 사람들도 읽을 수 있게 하려는 다루이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양계초(梁啓超)가 대동합방신의(大東合邦新義)로 개칭하여 출판하기도 하였다.
1884년에는 히라오카 고타로(平岡浩太) 등과 함께 중국 상해에 동양학관 설립에 참여하고 구사가베 쇼이치(日下部正一), 야마구치 고타로(山口五太)등의 활동을 지원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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