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과 홍길동전
- 최초 등록일
- 2016.09.02
- 최종 저작일
- 20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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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홍길동전]의 작가 허균의 연보, 저서 목록이 수록되었으며, [홍길동전]의 판본과 박성칠본에 대한 설명이 들어 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소설의 주인공 홍길동이 역사적 실존 인물이라는 사실은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서 알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 연산군 6년 1500년 경신년 10월 22일 강도 홍길동(洪吉同)의 체포 기록이 있으며, 같은 해 10월 28일 홍길동 문초 기록이 있고, 같은 해 11월 6일 공모자 엄귀손에 대한 국문 기록이 있으며, 같은 해 11월 28일 홍길동의 범죄 사실 진술 기록이 있다. 역시 같은 해 12월 29일자에는 홍길동이 옥정자와 홍대 차림으로 첨지라고 칭하며 떼를 지어 무기를 갖고 관부에 출몰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 중종 8년 1513년 계유년에는 충청도에서 홍길동이 도적질을 하고 유민들을 내쫓아 그들이 돌아오지 않아서 세금이 걷히지 않는다는 기록이 있으며, 중종 18년 1523년 계미년에는 1500년 경신년과 1501년 신유년에 홍길동의 옥사가 있었음이 기록되어 있다. 중종 25년 1530년 경인년에는 과거에 홍길동을 국문했던 전례가 있음이 기록되어 있다.
<중 략>
안성 지역의 대표적인 방각인은 박성칠로서, 그는 북촌서포(北村書舖)와 박성칠서점을 운영하면서 여러 판본을 발행했으며, 그 외에 총칭 안성방각소와 동문이방각소에서 안성동문이신판이 간행되었다. 박성칠은 북촌서포와 박성칠서점의 발행자로서, 안성 기좌리 태생이며, 그의 주소지인 경기도 안성군 기좌면 본리(현 보개면 기좌리)에 거주하면서 두 방각소의 발행인으로 활동했고, 그의 두 방각소 북촌서포와 박성칠서점은 당시 기좌리 소재 여러 방각소들 가운데서도 중요한 발행소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박성칠은 기좌리 출신자로, 조선 말기 1909년 출판법이 발효되자, 안성 지역 한지 생산 거점을 활용해서, 1912년 북촌서포를 개점하고, 1917년 박성칠서점을 개점했다. 그는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 초기 방각인으로 기록되며, 박용준(朴容濬; ?~1950년)이 일제강점기 후기 방각인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 자료
김한영. 「그날, 인사동 뒷골목에서 남몰래 흥분한 까닭―안성판방각본, 97년 만의 귀향」. 새롭게 새기는 근현대 교육자료 3. 『안성신문』. 2009년 7월 29일자.---. 「안성판방각본 초기 방각 상황 재고―‘동문이방각소’판 한글 고소설 판본들」. 『정신문화연구』 제37권 제1호 통권 134호(2014년 봄호): 193~228쪽.
이창헌. 「경판방각소설의 간기에 대한 연구」. 『한국문학논총』 제43집(2006년 8월): 69~106쪽.
기타 참고 문헌: 다음백과, 민족대백과, 위키백과, 아름다운 우리 고소설, 한글박물관 문헌 해제 등의 “허균," "홍길동전”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