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와 한일관계
- 최초 등록일
- 2016.08.01
- 최종 저작일
- 20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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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삼국시대와 한일관계
삼국과 일본의 관계와 삼국문화가 일본에 끼친 영향
백강전투의 영향과 동아시아 세계의 정립
목차
1. 시대적 개관
2. 삼국과 일본의 관계
1) 배경
2) 삼국문화 도입으로 인한 영향
3 .백강전투
1) 백강전투의 전개
2) 백강전투의 결과
3) 백강전투의 영향
4. 동아시아 세계의 성립
5. 통일신라 문화의 전파
본문내용
1. 시대적 개관
삼국시대 한반도와 일본의 상황은 3:1이었으나 신라가 한반도를 통일한 뒤에는 1:1의 관계로 단순화되었다. 그 과정에서 663년 백강전투는 한일관계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백강전투는 삼국통일 과정에서 당, 신라, 백제, 고구려, 일본 등 당시 동아시아 세계의 모든 국가가 뒤엉켜 신라, 당 연합군과 백제, 일본, 고구려 연합군으로 나뉘어 싸운 전쟁으로 일본과 당이 전면에서 싸운 전쟁이기도 하다.
4세기 이후의 중요한 사건으로는 낙랑군의 멸망(313년), 왜의 신라 공격, 광개토 대왕의 남정, 가라국의 쇠퇴와 대가라국의 흥기, 562년까지 가야 여러 나라의 멸망 등을 들 수 있으며, 이러한 정치적인 변동 속에서 부산 지역과 일본 열도의 관계도 규정되는 측면이 강하였다. 즉 4세기는 주로 김해의 가라국과 보조를 같이 하였으나, 5세기 중엽 이후는 신라 문물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 점에서 신라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게 되었고, 이로 인해 일본 열도와의 관계도 달라졌다. 따라서 삼국 시대 부산 지역과 일본 열도의 관계는 김해의 가라국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 시기와 신라가 진출한 시기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2. 삼국과 일본의 관계
1) 배경
- 4세기 일본 열도와의 교류
먼저 김해 가라국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 시기의 일본 열도와의 교류에 대해서 살펴보면, 부산 지역의 중심 고분인 부산 복천동 고분군에서 일본 열도 계통의 유물이 다수 출토되었는데, 대부분 적갈색 연질 토기들이다. 목 항아리, 작은 항아리 받침대, 손잡이 달린 항아리, 굽다리 접시 등이 있으며 표면을 깨끗하게 문질러 매끄러운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이들 토기는 일본 열도에서 건너온 것도 일부 있지만, 재지 토기의 영향을 받아서 변화되거나 재지 공인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도 적지 않은 것으로 추측된다. 대표적으로 토기의 표면을 물 손질을 하거나 격자 타날 혹은 평행 타날한 흔적이 보이는 대신 내부는 깎기 조정을 하지 않았는데, 이는 일본의 하지키(土師器)]와는 다른 점이다.
참고 자료
네이버 지식백과 삼국 시대의 일본 열도와의 교류 [三國 時代의 日本 列島와의 交流]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위키백과 백강전투
http://blog.naver.com/elkjbc/220411546051
네이버 지식백과 백강전투 [白江戰鬪] (한국고중세사사전, 2007. 3. 30., 가람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