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머리말
Ⅰ. 廣州13行의 誕生
Ⅱ. 廣東貿易體制의 形成
1. 廣州13行의 貿易 方式
2. 淸의 주요 교역품
Ⅲ. 廣州13行의 衰退
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머리말
淸 제국 초기에는 明 말의 혼란한 사회상이 여전히 지속되었지만, 康熙帝가 즉위한 후 통일 제국으로서의 기반을 확고히 다지고 혼란한 사회를 정비하는데 성공하였다.
이 후 康熙帝, 雍正帝, 乾隆帝가 통치하던 '康乾盛世'를 맞이하게 된다. 이 시기 청 제국의 외교관계는 오랜 쇄국정책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문호를 굳게 닫고 전통적 생활양식과 질서에만 집착해온 폐쇄적 중국사회도 서양의 근대적 변혁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16세기를 전후로 유럽은 신항로를 개척하며 '지리대발견'에 나서게 되었다. 유럽인의 중국 도래는 동서 문화 교류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서양인들의 눈에 신비로우며, 매력적이었으나, 봉쇄되었던 중국의 바다가 열리자 많은 서양인과 서양의 상선들이 중국을 찾았다.
서양인들의 중국 물품 수요에 서양과 중국의 무역은 활기를 띄며 진행되었고, 서양과 중국의 무역량은 날이 갈수록 증가하였다.
해양은 가장 빠른 교량이 되었고 어촌은 항구가 되고, 항구는 도시로 변하였다.
즉, 광주는 ‘바다의 비단길’이 시작하는 곳이었고, 13행은 중국이 세계로 나가는 중요한 관문이었다.
이 후 본문에서는 淸 제국의 유일한 합법적인 대외무역 항구가 있는 廣東지역의 廣州 13行을 중심으로 13行의 탄생부터 廣東貿易體制의 형성과 더불어 당시 광동지역 무역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또한 근세와 근대의 시대구분 기준이 되기도 하는 아편전쟁의 결과로 체결된 南京條約에 따라 5개항이 개항되면서 광동지역의 대외무역상의 독점이 타파되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아편전쟁 이전까지의 광주13행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Ⅰ. 廣州13行의 誕生
康熙 22(1683) 중국은 강희제가 三蕃의 亂을 진압하고, 대만을 수복하여 소위 ‘康熙盛世’가 시작되었다.
상황판단이 빨랐던 강희제는 장기간 침체에 빠져있던 연해 지역 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해 명대 이래 300여 년 동안 실시해오던 康熙23年(1684) 해금정책을 폐지하고 바다를 열어 외부와 통상을 시작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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