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제가 한국 근대사 과목에서 A+를 받은 레포트이자 발표문 원문입니다.
목차
I. 경제 정책과 수탈
1. 1910년대
2. 1920년대
3. 1930년대
II. 교육 문화 정책
III. 맺음말
Ⅸ 참고자료
본문내용
I. 경제 정책과 수탈
1. 1910년대
일제는 한국을 병합한 후 식민지 수탈경제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경제정책을 추진하였다. 이는 기본적으로는 식량과 원료를 일본으로 반출하고 상품과 자본을 조선으로 반입하는 구조였다. 1910년대는 그 기반을 구축하는 단계로서, 일제는 화폐, 금융제도, 교통, 통신 등 기간산업 정비와 함께 근대적 소유제를 도입한다는 명분하에 토지 등 조선의 1차 자원을 수탈하고자 하였다. 1910년대의 대표적인 경제 수탈정책은 1910년에 시작한 토지조사사업과 회사령, 1911년에는 산림령과 어업령, 1915년의 광업령 등이 있지만 토지조사 사업과 회사령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먼저 토지조사 사업을 살펴보면 토지조사사업은 일제가 조선에서 근대화라는 명분 아래 토지소유권의 확인과 지세부과 체계의 정비를 강압적으로 추진한 것이다. 그 결과 조선총독부는 방대한 토지를 소유하는 최대 지주가 되었고 안정적인 지세수입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일제는 조선총독부가 토지와 지세를 효율적으로 장악할 수 있도록 1910년부터 1918년까지 2456만원(현재가치 약1조원)이라는 거액을 들여 토지조사사업을 전면적으로 실시했다. 토지조사사업은 크게 토지소유권 조사, 지형지모 조사, 토지가격 선정, 토지대장 작성 등으로 실시되었다. 토지소유권 조사는 각 토지 별로 토지소유권 및 경계를 결정하여 토지 등기제도를 확립하기 위한 토지대장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지형지모 조사는 전국적으로 지형도를 만드는 작업이었고 토지가격 선정은 전국의 지가를 조사하여 지세부과를 위한 표준을 만드는 것이었다. 일제는 토지조사 사업을 실시하기 위해 1910년 3월 “토지조사국”을 창설하고 같은 해 9월 “임시조사국관제” 칙령 제 20호와 1912년 8월 “고등토지조사위원회관제”, “토지조사령”등을 차례로 제정하였다. 토지조사사업의 근간이 되었던 “토지조사령”의 핵심은 “토지의 소유자는 조선 총독이 정하는 기간 내에 주소, 성명 또는 명칭, 소유지의 소재, 지목, 자번호, 등급, 결수를 임시토지국장에게 신고해야 한다.
참고 자료
정재정, 「식민지수탈구조의구축」, 「한국사」, 국사편찬위원회,2001
조석곤, 「조선토지조사사업보고서」 ,1918
강만길, 「한국자본주의의역사」, 역사비평사, 2000
손정목, 「회사령연구」, 「한국사연구5」, 한국사연구회, 1984
진영은, 「교육과정과 교육평가의 탐구」, 학지사, 2004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정선영, 「역사교육의 이해」, 삼지원, 2001
양호환, 「역사교육의 이론과 방법」, 삼지원, 2006
김흥수, 「한국역사교육사」, 대한교과서주식회사,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