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식민지 통치기구 - 식민통치기구의 성립, 일제시대 통치기구 및 기능, 통치기구의 변천
- 최초 등록일
- 2015.06.24
- 최종 저작일
- 20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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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식민통치기구의 성립
II. 통치기구 및 기능
1. 중앙기구의 조직
2. 지방통치조직
3. 특수기구의 설치
III. 통치기구의 변천
본문내용
1. 식민통치기구의 성립
한국민족에 대한 일제의 식민지 통치제도는 식민지 본연의 경제상 목적보다는 대륙침략을 위한 군사상의 전진기지로서 한층 중요시되었다. 따라서 통치기구는 헌병을 활용한 무단조직, 즉 무관총관이 전권하는 군사정치체제를 수립하였던 것이다. 이는 우리 민족의 지속적인 저항을 효율적으로 제압하고 경제적인 약탈을 위한 것이며, 나아가 한민족을 말살하기 위한 구상이었다.
이와 같은 무관통치체제는 영국의 식민지총독제제와 러시아의 총독정치를 모방한 대만의 통치체제를 모방한 것이나, 한민족의 끊임없는 저항과 전통성이 작용하여 치안 유지를 요체로 하는 독특한 형식의 식민지 통치체제가 성립되었던 것이다.
한국에 이와 같은 무관통치체제가 성립되기까지는 약 6년간이라는 실험적 준비기간이 소요되었던 것으로 이를 편의상 두 가지로 분류하면 그 하나는 노일전쟁 중 일본 육군이 한국 내에서 실시한 전시군정체제와 다른 하나는 노일전쟁 이후 일제가 창설한 통감부의 구성이었다.
노일전쟁 중 일제는 한일의정서라는 기만적 조약을 빙자하여 한 국주둔군으로서 한국의 치안을 담당케 하고 군율을 한국에 적용시켰다. 즉 1904년 한국주둔군사령관으로 한국에 부임한 하세가와 요시미찌는 자의로 함남 ․ 함북에 군정을 실시하고 서울과 전주에 군사경찰제를 실시함으로써 한국은 일제의 군정하에 놓이게 되었다.
이때 전국 중요 도시에 12개의 헌병분대와 56개의 헌병분소가 설치되었는데 이는 2개 사단의 일본군의 지원을 받으며 군사시설의 보호를 구실로 삼아 군사경찰뿐 아니라 치안경찰의 임무를 담당하였다. 따라서 우리 민족의 사회단체의 조사, 의병들의 토벌, 항일투사의 체포 등이 주요 임무였다.
이와 같은 군정은 비록 단기간으로 끝났으나 일본군사령관이 지휘하고 헌병이 그 주역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총독부의 헌병경찰제도의 원형으로 볼 수 있다.
노일전쟁 이후 한국의 보호국화 결정에 따라 통감부가 설치되자 일본정부에서는 통감부 조직문제를 놓고 양론이 대두하였는데 이것은 무관조직론과 문관조직론과의 대립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