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정권의 지배기구(무신정권,무신란, 도방, 교정도감, 정방, 서방, 마별초, 삼별초)
- 최초 등록일
- 2014.11.10
- 최종 저작일
- 20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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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에 대한 레포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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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복사해서 붙인 자료가 아닌
직접 도서관에서 자료찾아보고 정리해가며 쓴 레포트입니다.
참고하시어 도움 되시길 바래요 ㅎ
목차
Ⅰ. 사병의 형성과 도방
Ⅱ. 교정도감
Ⅲ. 정방
Ⅳ. 서방
Ⅴ. 마별초
Ⅵ. 삼별초
참고자료
본문내용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본문 내용 中 발췌]
Ⅰ. 사병의 형성과 도방
도방은 무력적 뒷받침이 된 사병집단의 하나이다. 신변의 보오나 정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이들의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였다.
이중 악소는 젊은 무뢰배를 가리키지만 무장들이 이들을 사병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사사는 결사대란 뜻이고, 용사·장사는 군인의 모습을 묘사한 데서 나온 말이다. 이에 비하면 가동은 신분적인 의미가 많이 포함된 용어로서 집에서 부리는 노복을 일컫는데, 무인들은 이들을 무장시켜 사병화하였다. 그리하여 이들 가동의 무리가 주로 사병의 하층부를 이룬 반면에 그 상층부를 형성한 것이 문객이었다. 문객은 무인권력자에게 충성을 다하는 봉건적 가신과 유사한 조재로서, 무장들은 다투어 이들도 휘하에 모아서 사병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하지만 상당한 제약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단계를 넘어서 사병을 조직화하여 하나의 기구로 만든 것이 도방이었다. 이것을 처음 조직한 사람은 경대승이었다. 정권의 탈취 과정에서 당시의 대부분 무신들을 적으로 돌려야 했던 그로서는 보다 안전한 신변보호책이 필요하여 사사 백수십인을 볼러 모아 문하에 두고는 도방이라 칭했던 것이다. 이렇게 맺어진 도방원은 점차 경대승의 신변을 호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보의 수집과 반대파의 숙청, 그리고 심지어 주간의 권세를 배경으로 약탈과 살인 등의 폐단도 끼쳤다. 이런 관계로 도방은 명종 13년 경대승의 병사와 동시에 철저한 탄압을 받고 해체되었다.
그러나 도방은 신종 3년 최충헌에 의해 큰 규모로 재건되었다. 그 역시 정권을 잡은 후 신변의 보호와 집권체제의 강화를 위해 강력한 무력장치가 절실히 필요하였거니와, 그는 이 문제를 경대승 때의 도방을 부활시킴으로써 해결하려고 하였다. 최충헌의 도방은 그의 아들 최우에 이르러 내도방과 외도방으로 확대·개편되었다. 이는 다음 집정인 최항 때 확장되었다가 최씨정권이 무너지고 김준이 집권한 이후에는 종래의 6번제로 되돌아가는 변화과정을 밟았다.
참고 자료
최씨정권시대와 대몽항쟁 | 김주찬 저 | 한국파스퇴르 2014
고려시대사 | 박용운 | 일지사 2008
고려 삼별초의 대몽항쟁 | 윤용혁 저 | 일지사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