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곡리와 선사시대 유적지,아슐리안 석기,아슐리안 도구 제작,유럽의 아슐리안 문화,아슐리안 전통,청동기 시대 문자 등장 배경과 시대구분 기준
- 최초 등록일
- 2014.07.24
- 최종 저작일
- 20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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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아슐리안 석기
2. 청동기 시대 문자 등장 배경과 시대구분 기준
본문내용
아슐리안 석기는 전기 구석기시대의 대표적인 유물로 프랑스의 생따슐(ST.Acheul) 유적에서 발견된 것과 유사한 석기를 일컫는다. 석재의 양쪽 면을 가공해 날을 세우는 방법으로 제작된 석기로 사냥, 도살행위, 나무나 가죽, 뼈의 가공 등에 모두 사용된 다목적 도구로 이해된다. 주먹도끼는 호모 에렉투스가 머리를 사용해서 돌을 쪼개기 시작한데서 기원했기 때문에 학자들은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나온 곳만이 머리가 발달한 인류가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도끼가 발견된 곳은 유럽으로부터 인도까지만이고 그 동쪽 즉 극동아시아에서는 그런 도끼가 발견이 안 되었으므로 유럽의 교수진들은 동아시아를 미개한 족속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1978년 동두천에 주둔하던 미군병사 그렉보웬이 한탄강에서 주먹도끼를 발견하였고 강변에서 발견된 석기들은 당시 서울대학교 박물관장이던 고(故) 김원룡 교수에게 신고되어, 영남대학교의 정영화 교수에 의해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로 학계에 최초로 보고되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아슐리안 주먹도끼는 동아시아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할렘 모비우스의 학설이 깨져 유럽·아프리카인들이 동아시아인들보다 우월하다는 주장도 깨지게 되었다. 유적은 현재 전곡읍 남쪽 한탄강이 감싸고도는 현무암대지 위에 분포하고 있으며, 1979년 최초의 고고학 발굴조사 이후 그해 10월에 국가사적 제268호로 지정되었다. 이후로도 2009년까지 모두 17차례에 걸친 고고학적인 조사가 실시되었다. 발굴결과 주먹도끼, 사냥돌, 주먹찌르개, 긁개, 홈날, 찌르개 등 다양한 종류의 석기가 발견되었다. 전곡리 주먹도끼는 유럽과 아프리카의 아슐리안 주먹도끼와 비교해 자연면이 많이 남아있고 석기의 두께가 두꺼운 것이 특징이다. 사적 제268호로 지정보호 되고 있는 전곡리 선사유적은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밝혀 줄 중요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한국과 동아시아 지역의 구석기 문화연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