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의 경제적 침략과 무역구조
- 최초 등록일
- 2014.06.06
- 최종 저작일
- 20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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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개항 이전 국내외 정세
1. 국외 정세
2. 국내 정세
Ⅱ. 개항과 불평등 조약체계
Ⅲ. 개항 후 제국주의의 경제적 침략과 무역구조
Ⅳ. 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개항 이전 국내외 정세
1. 국외 정세
19세기 자본주의는 영국, 프랑스, 독일과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적 규모로 발전하였다. 서구자본주의는 특히 19세기 70년대 초에 이르러서는 주기적 공황을 겪으면서 점차 독점자본화하고, 이에 따라 거대한 자본을 동원하기 위해 금융자본의 독점도 완성하였다. 산업자본이 독점자본으로 성장하자 서구자본주의 국가들은 국내의 과잉자본을 해외에 투자하여 초과이윤을 얻기 위해 자본수출을 꾀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해외에서 자본수출시장을 독점적으로 확보하기 위하여 그러한 시장을 식민지로 지배했다. 이것을 제국주의라고 부른다.
서구자본주의 열강은 자국 내의 자본이 독점화되기 이전부터 해외에서 값싼 원료를 구하고, 자국의 상품을 판매할 목적으로 식민지를 개척했다. 19세기 중엽 이미 세계의 대부분을 분할 지배하고 있었던 서구자본주의 열강은 아직 미개척지로 남아있었던 동아시아에 대한 침략을 감행하였다. 영국은 1840년 아편전쟁을 도발하면서 중국에 대한 본격적 침략을 개시했다. 영국은 아편전쟁의 결과 중국에 불평등조약을 강요하여 홍콩을 조차하고, 상해, 광주 등 5개 항구의 개방을 강제했다. 아편 밀무역이 원인이 되었던 전쟁을 종결시키는 조약이었으나 아편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 정치적으로는 중국의 국가 주권을, 경제적으로는 국내 시장을 침해하는 규정들로 채워져 있었다. 뒤이어 프랑스와 미국도 중국과 각각 치외법권과 무역상의 최혜국대우를 보장받았다. 서구열강의 중국침략은 크림전쟁의 발발로 한때 주춤했으나, 1856년 전쟁이 끝나자 영프연합군은 1856년 제2차 아편전쟁을 도발하여 천진과 북경을 함락시켰다. 그 결과 천진조약과 북경조약이 체결되었다.
참고 자료
이윤상, 1996 「제국주의의 경제침탈」『한국역사입문』3권, 풀빛
도면회, 1999「개항 후의 국제무역」『한국사』39권, 국사편찬위원회
최덕수, 2000「강화도조약과 개항」『한국사』37권, 국사편찬위원회
최덕수, 2000「개항의 역사적 의의」『한국사』37권,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역사연구회편, 1989 「제국주의의 침략과 조선의 대응」,『한국사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