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청궁
- 최초 등록일
- 2014.05.11
- 최종 저작일
- 20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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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시대적 배경
3. 건청궁의 기능 및 운용
4. 맺는말
본문내용
19세기말의 조선은 서구열강의 제국주의에 의한 그들의 침탈정책으로 인하여 그 중심에 놓여 있는 조선이 혼란한 정국을 겪고 있던 때이다. 고종(高宗) 초기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정치 집권과 쇄국정책(鎖國政策), 고종의 외교정책이 서로 엇갈리는 가운데 경복궁(景福宮)은 조선의 변화를 가장 먼저 겪고 있었음에도 집권자 세력의 발로로 새로운 궁궐의 조영은 지속되고 있었다. 궁궐 밖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고종은 왕위에 올랐으나, 대왕대비인 신정왕후(神貞王后) 조씨에 의한 수렴청정(垂簾聽政)과 흥선대원군의 세도에 의하여 경복궁 중건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건청궁(乾淸宮)의 건립을 주도하게 되었다.
2. 시대적 배경
(1) 고종의 등극과 경복궁 중건
고종은 영조(英祖)의 현손(玄孫)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의 둘째아들이며 어머니는 여흥부대부인 민씨로 1852년 7월 25일 흥선군 사저에서 출생하였다. 고종이 익종(翼宗)의 대통을 계승하고 철종(哲宗)의 귀를 이어 즉위하게 된 것은 아버지 흥선군과 익종비이자 대왕대비인 신정왕후의 묵계에 의해서였다. 1863년(철종14) 12월 8일 철종이 승하함에 따라 왕위를 12월 31일 창덕궁(彰德宮) 인정문에서 물려받았다. 고종의 나리 12살로 대왕대비 조씨가 희정당에 나아서 수렴청정을 하게 되었다. 이후 실제 정사는 대왕대비 조씨에 의하여 좌우되었고 1865년(고종2)에 대왕대비가 경복궁 중건을 지시하였다. 대왕대비는 경복궁 중건을 위한 영건도감(營建都監) 설치를 지시하고 흥선대원군에게 경복궁 중건에 대한 주도권을 부여함으로써 힘을 실어주었다. 이후 대원군은 경복궁 중건의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되며 약 10여 년간 전권을 장악하여 실세를 누리게 되었다.
경복궁의 중건은 옛 규례를 따르되, 주요 전각의 경우 기존의 건물 배치와 같이 복원하게 되었으며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그 자리에 그대로 대부분의 건물이 중건되었다. 1867년(고종4)에 주요 건물에 대한 중건이 거의 완료되었다.
참고 자료
경복궁 건청궁 복원 연구 / 조규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