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 중, 근세 중국사(한대~청대)
- 최초 등록일
- 2003.06.09
- 최종 저작일
- 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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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아무쪼록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목차
<한왕조의 개막과 체제 정비>
<황금시대를 이룩한 무제>
<유교가 제국의 이념으로>
<후한의 창업>
<위·진 남북조 시대>
<당나라>
<5대 10국>
<송나라>
<회화>
<조각>
<공예>
<서예>
<원나라>
본문내용
항우와의 5년에 걸친 전쟁 끝에 승리를 거둔 유방은 기원전 202년 즉위식을 거행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유방은 한나라의 개조(開祖)라는 뜻에서 보통 한(漢) 고조(高祖)라고 불린다. 낙양에 돌아온 고조는 군대를 해산하여 각자 집으로 돌려보내고 군신들을 모아 놓고 성대한 잔치를 벌였다. 유방은 술잔을 높이 치켜들고 군신들을 향해 말했다.
"내가 천하를 차지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이며, 항우가 천하를 잃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인지 그대들은 숨김 없이 말해 보아라."
왕릉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폐하께서는 거만하여 사람을 업신여기시고, 항우는 인자하여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폐하께서는 성을 공략하여 승리한 뒤에는 공적이 있는 자들에게 전리품을 나누어 주어 천하와 더불어 승리를 같이 하셨습니다. 그러나 항우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그는 어진자와 능력 있는 자를 질투, 의심하고 공이 있는 사람에게 차마 땅을 나누어 주지 못하고 공을 모두 자기 것으로 했습니다. 이것이 항우가 천하를 잃은 까닭입니다."
고조는 한 잔 술을 들이키고 말했다.
"그대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군. 군진의 장막 속에서 계책을 세워 천리 밖의 승패를 판가름짓는 일은 내가 장량보다 못하고, 국가를 다스리고 백성을 위로하며 보급을 원활히 하는 일은 내가 소하보다 못하고,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싸우면 반드시 이기고 공격하면 반드시 빼앗는 일은 내가 한신보다 못하오. 이 세 사람은 모두 천하의 인걸이오. 나는 이들 셋을 잘썼기 때문에 천하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오. 항우에게는 범증 한 사람이 있었을 뿐인데 이 사람마저도 제대로 쓰지 못했기 때문에 항우는 천하를 잃게 된 것이오."이 말에 군신들은 모두 탄복했다.
고조가 황제에 즉위한 뒤 최대 인건으로 삼은 것은 바로 도읍지의 문제였다. 처음에 고조는 주 왕실의 융성을 이어받고 싶었고 또한 대부분의 군신들이 낙양의 장점을 들어 낙양을 수도로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낙양을 수도로 삼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장량이 이에 반대하며 말했다.
"낙양이 비록 장점도 많고 교통도 편리하긴 하지만, 사방에서 적의 공격을 받기 쉬고 피신처가 없습니다. 이에 비하면 진나라 도읍이었던 관중은 기름진 평야가 천 리에 걸쳐 있고 천연의 요새지로 인구도 많고 물자도 풍부합니다. 그 안쪽에는 파·촉의 땅이 있으며,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병자루처럼 좁게 트인 동쪽으로는 적은 병력으로도 백만 대군을 견제할 수 있으니, 이곳이야말로 천하의 요새라 할 수 있습니다.
장량의 판단을 믿은 고조는 즉시 서쪽으로 옮겨 관중 근처인 장안에 새 수도를 정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새로운 궁전 미앙궁을 짓기 시작했다. 장안은 양자강 중류의 남군을 남단으로하고, 황하 하류의 유역에서 황하 분류인 제수에 걸치는 동군을 동단으로 하는 지역으로서 천하의 중앙을 동서로 관통하여 여러 왕국을 제압하기 좋은 곳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