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 열풍의 의미에 대해
- 최초 등록일
- 2014.01.03
- 최종 저작일
- 2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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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체 게바라의 생애
2. 체 게바라와 카스트로의 만남
3. 체 게바라 열풍의 의미
Ⅲ. 결 론
참 고 문 헌
본문내용
Ⅰ. 서 론
현대사에서 1959년의 쿠바혁명만큼 독특한 정열을 보여준 정치적 사건은 흔하지 않다. ‘쿠바혁명’은 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1928년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체 게바라는 쿠바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볼리비아로 건너가 게릴라 활동을 벌이다가 1967년 10월 8일 볼리비아 정부군에 체포돼 다음날 총살됐다.
체 게바라가 사망 후 40년이 지났지만 그의 생애를 다룬 전기와 영화가 쏟아져 나올 만큼 그에 대한 열기는 현재까지 뜨겁다. 특히 쿠바 사진작가 알베르토 코르다가 찍은 긴 머리에 베레모를 쓴 체게바라의 사진은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사진으로 꼽히기도 한다. 세계 젊은이들이 체 게바라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다니고, 여러 권의 일대기와 영화, 다큐멘터리가 소개되고 있다.
‘더 체(The Che)’로 불리는 그는 계란을 바위에 치는 격인 줄 알면서도 강자에 대항한 담이 큰 사람이었다. 미국인들 눈에 가시 같은 존재이었으나 미국인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그가 무참히 살해당한 곳은 볼리비아였지만 볼리비아 사람들도 그를 사랑하였고, 고국 아르헨티나를 떠나 쿠바 국적을 취득하였지만 아르헨티나 국민 역시 그가 만리타국에서 애국을 하였다고 생각하고 그를 사랑하였다.
그가 붙잡힌 적이 있던 멕시코에서도 그는 영웅이었으며, 쿠바를 포함한 모든 라틴 국가에서 그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오늘날 그의 존재와 생존 시 활동은 아메리카 대륙을 떠나 세계 곳곳에서 연구와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체 게바라의 생애와 자본주의 세계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불고 있는 체 게바라 열풍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자.
Ⅱ. 본 론
1. 체 게바라의 생애
체 게바라는 1928년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에서 스페인-아일랜드 혈통의 중류 가정에서 5남매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20대 초반까지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의학을 공부하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하지만 당시 그가 두 번에 걸쳐 실시한 남미 전역 여행은 게바라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
참고 자료
고영일, ‘20 세기말에 본 중남미 500 년사와 사상가들 : 체 게바라 생애 읽기’, 한 국 라틴아메리카학회, 1999.
김영규, ‘체 게바라가 살아 한국에 돌아온다면’, 이화문화출판사, 2002.
장 코로미에 ․ 김미선 역, ‘체 게바라 평전’, 실천문학사, 2000.
이원태, ‘체 게바라 신드롬의 사회학’, 경제와 사회,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