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기
- 최초 등록일
- 2014.01.02
- 최종 저작일
- 2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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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서론
Ⅱ. 본론
1. 조선 전기의 정치세력과 권력구조
2. 왕자의 난
3. 사화
4. 조선 왕릉과 풍수
Ⅲ. 결론
본문내용
조선의 정치는 국왕·대신·삼사라는 세 개의 주요한 정치세력이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맞추도록 되어 있다. 군약신강(君弱臣强)이라는 말도 있듯이 조선의 왕권은 다른 나라보다 전제성이 약하기는 했지만 국왕은 언제나 최후의 수단으로 폭력적인 숙청을 동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성종 16년(1485년)에 반포된 『경국대전』(經國大典)은 각 관서의 기능을 포괄적이거나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었고 특히 대간에 의한 국왕 탄핵과 간쟁이 보장되었다. 이런 ‘경국대전 체제’가 틀 잡아 놓은 군신정치는, 연산군처럼 강력한 왕권을 휘두른 폭군만은 예외로 조선왕조가 끝날 때까지 유지되었다.
조선 최초의 사화는 연산군 4년(1498년)에 일어난 무오사화(戊午士禍)다. 흥미로운 것은 이 사화가 『경국대전』이 완성된 지 겨우 13년 만에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원래 조선은 이성계와 정도전의 무력적인 역성혁명에 의해 만들어진 왕조다. 거사 직후 정도전은 재상이 중심이 된 군신공치의 왕조를 설계했으나 곧바로 태종 이방원에 의해 제거됐다. 조선은 개국부터 국왕 중심의 나라가 됐으나 성종대의 『경국대전』이 그것을 되돌려 놓았다. 하지만 성종의 후사인 연산군은 ‘경국대전 체제’를 거부했다.
왕조국가인 조선의 국왕은 일본의 천황처럼 허수아비는 아니었고. 중국의 황제처럼 절대권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이론상의 절대권이었을 뿐 실제 조선의 국왕은 신하들의 끊임없는 견제를 받았다. 중국의 황제는 신하들에게 무조건적인 숭배와 충성의 대상이었으나, 조선의 국왕은 무조건적인 숭배나 충성의 대상이 아니라 조건부 충성의 대상일 때도 많았다. 태종의 집권시기부터 연산군 대에 절정을 이룬 왕권은 그 이후로는 왕권이 신권에 앞도 당하는 현상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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