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철학 및 교육사 대구 향교 답사
- 최초 등록일
- 2013.11.27
- 최종 저작일
- 2012.02
- 19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목차
Ⅰ. 답사 개요
1. 대구향교를 선정한 이유
2. 대구향교 답사 과정
Ⅱ. 향교의 역할과 기능
1. 향교란 ?
2. 향교의 역사
3. 오늘날의 향교
4. 향교의 기능
Ⅲ. 대구 향교
1. 대구 향교의 설립 배경 및 구조
2. 전통적 교육관에서 보았을 때 오늘날 교육의 문제점
3. 향교 교육이 현대 교육의 문제를 극복하는 데 주는 시사점
Ⅳ. 향교 관련 교육자와 교육사상
1. 공자
(1) 생애
(2) 공자의 인
(3) 공자의 덕치주의
2. 주자
(1) 생애
(2) 주자의 이기론 理氣論
(3) 주자의 심성론(心性論)
3. 퇴계 이황
(1) 생애
(2) 이황의 이기론
(3) 이황의 심성론(인성론)
(4) 이황의 수양론
본문내용
Ⅰ. 답사 개요
1. 대구향교를 선정한 이유
교육은 개인의 미래와 사회 전체의 유지 발전 등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것이지만, 현재 우리의 교육은 지나친 입시 경쟁과 그로 인한 공교육의 붕괴 및 사교육의 확대, 학교 폭력 등의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현대사회의 이러한 교육문제는 서구 근대 공교육의 형성 과정에서 비롯된 공리주의적 교육관이 우리나라에 유입되면서 기존의 인간 중심의 전통적인 교육관이 왜곡된 데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현대사회의 교육문제는 전통적인 교육관을 되돌아보고, 이를 되살리려는 노력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전통교육기관들 중의 하나인 향교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였고, 마침 가까운 곳에 대구향교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곳을 방문해 보기로 하였다.
<중 략>
퇴계는 외척의 권력 투쟁이 격심하였던 혼란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성실히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경적을 관장하고 글을 짓거나 임금의 질문에 대답하는 역할을 맡은 홍문관의 관직에 가장 오래 재직하였다. 45세 때 을묘사화가 일어나 많은 선비들이 희생당하고, 그 자신도 한 때 파직당하였으나 복직되었다.
46세 때 고향으로 돌아와 양진암을 짓고 호를 퇴계라 하며 벼슬에서 물러날 뜻을 굳힌 것으로 보이며, 외직을 구하여 단양군수(9개월)와 풍기군수(1년 2개월)로 나갔다가 끝내 벼슬을 버리고 귀향하였다. 특히 풍기 군수로 있을 때는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 서원을 조정에 요청하여 소수서원이라는 최초의 사액을 받게 하였다.
그가 물러나기를 결심한 것은 당시 외척들이 권력을 독점하여 어지러운 정치적 상황 속에서, 벼슬에 나가 한 시대를 바로 잡는 일 보다 학문 연구와 교육을 통해 인간의 올바른 삶의 도리를 밝혀 후세를 위해 참다운 표준을 제시하는 데 그 자신의 역할이 자각하였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사생활에서도 불행한 일이 속출하여 27세에 허씨부인을 잃고, 30세에 권씨 부인과 재혼하였는데 46세 때 그 권씨부인마저 잃는다. 더구나 단양군수로 나가던 해(48세)에는 둘째 아들마저 잃는 슬픔을 겪는다. 50세 때에는 친형인 좌윤공 해를 사화의 격동 속에서 잃는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