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본 역사 - 도쿠가와 이에야스
- 최초 등록일
- 2013.10.10
- 최종 저작일
- 20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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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1.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현재의 평가
2. 인물선정 배경
Ⅱ. 본론
1.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생애
- 목숨을 담보할 수 없는 위태로운 인질생활
- 오다 노부나가와 손을 잡다
-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고개 숙이다.
- 운명의 세키가하라 전투
- 일본문화의 꽃 에도막부를 열다.
- 조선과의 관계, 기유약조
Ⅲ. 결론
1.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대한 전반적인 정리
- 생애
- 역사적 배경 속에서 인물의 업적
- 기존의 평가와 나의 재평가
본문내용
이에야스는 마쓰라의 센류에 제시된 시에서 묘사된 것처럼 "인내의 귀재"로 평가받는다. 이에야스는 어린 시절에 부모를 여의고 여러 차례 죽음의 위기를 겪었으며, 계속 복종을 강요당해왔다. 하지만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에 히데요시에게 철저히 복종하며, 임진왜란 도중에도 영지만 지키며 신중히 대처하였다고 평가받는다. 때문에 이에야스의 삶은 일본에서 여러 소설과 책, 드라마, 영화, 연극의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나아가 일본 사람들은 그를 늘 ‘일본의 10걸’로 선정하면서 존경하고 있다. 반면 에도 시대 서민들 사이에서는 천하 통일의 과정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며 '살쾡이 영감'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하여 상반되는 평가를 가지고 있다.
일본에는 ‘오다 노부나가가 준 쌀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떡을 만들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그 떡을 먹었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일본 중세 말의 전쟁을 종식하고 통일을 이룩한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능력을 한마디로 평가한 말이다. 노부나가는 천하 통일의 기반을 구축했으며, 히데요시가 천하 통일을 완성했지만, 마지막에 에도 막부를 수립한 사람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이다.
<중 략>
조선과 일본은 임진왜란으로 국교가 단절되었었다. 그러나 전쟁 뒤 10년 만에 도쿠가와 막부에 의해 전권을 위임받은 대마도주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들여 기유약조가 성립되었고, 이때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대마도주는 새로 집권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임진왜란에 책임이 없다는 입장표명과 조선인 포로160명과 명군 장수를 송환했다. 한편으로는 조선이 계속 복교 요청을 거부하면 재침할 수 도 있다고 협박했다. 실제 1603년, 사쓰마에 억류되어 있다가 송환되었던 하동 출신의 유학 김광의 보고 내용은 심상치 않았다. 그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조선과 다시 화친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과 ‘화친 요청을 거부할 경우 재침이 있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조선은 이어 ‘일본이 먼저 화친을 요청하는 국서를 보낼 것’,‘선릉과 정릉을 파헤친 범인을 묶어 보낼 것’,‘조선인 포로들을 돌려보낼 것’ 등을 국교 재개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
참고 자료
이승민 교수님 에도막부ppt
네이버 지식in, 이미지, 블로그
EBS 2012 수능특강 세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