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놀이-사냥에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12.11.28
- 최종 저작일
- 2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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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우리나라 전통놀이인 사냥의 역사와 그 유래, 방법 등에 대한 레포트
목차
< 들어가면서 >
< 사냥의 역사 >
< 사냥의 방법에 따른 종류 >
< 사냥의 과정 >
< 사냥에 대한 속신 >
< 마치면서 >
본문내용
< 들어가면서 >
- 우리나라에는 옛날부터 사람들과 어울려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재미난 놀이거리가 많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씨름이나 윷놀이, 연날리기 등 전통놀이를 하는 풍경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는 아니어도 축제에서나 가족끼리 명절날에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 조사하게 된 사냥은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재에 등재되었다는 매사냥을 제외하고는 그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사냥은 창, 활, 총, 덫, 개 등을 이용하여 산짐승이나 들짐승을 잡는 일로, 수렵이라고도 하는데, 옛날에는 먹을 것을 얻기 위한 생활 수단의 한 가지였으나, 문화가 발달함에 따라 왕이 귀족들의 오락 수단이 된 적도 있었다. 우리는 단지 사냥이 식량 확보를 위한 일종의 전투라고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삼국시대나 고려시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사냥은 왕이나 귀족, 그리고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도 유행하는 놀이이자 스포츠이었다. 또한 지금 남아있는 매사냥 외에도 창 사냥, 함정사냥, 몰이사냥 등 다양한 사냥들이 존재했었고 멧돼지나 토끼, 참새뿐만 아니라 호랑이도 사냥의 대상이 되었다. 임금들도 사냥을 좋아하여 많이 즐겼는데 고려의 충렬왕과 조선의 태종이 가장 사냥을 좋아하였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 민족에게 사랑받는 놀이였던 사냥은 오늘날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그렇다면 사냥이 그 전까지 사냥이 어떻게 행해졌고 발전되었는지, 그리고 왜 사랑받았었고 결국엔 그 모습을 감추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 등을 지금부터 시대별로 차차 살펴보도록 하자.
< 사냥의 역사 >
◆ 고구려 : 고구려에서는 사냥을 군사 훈련의 하나로 삼았다. 또 사냥을 통해 종묘나 산천 제사에 쓸 제물을 얻었다. 그리고 임금의 장기간에 걸치는 사냥은 변경의 국방 상태를 점검하려는 의도도 들어 있었다. 고구려의 사냥 모습은 무용총 수렵도 등의 고분벽화를 통해 알 수 있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말을 탄 사냥꾼이 달아나는 호랑이와 사슴을 활[短弓]로 쏘아 잡는 모습을 그린 무용총의 것이다. 고구려에서는 정기적으로 사냥대회를 열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해마다 삼월 삼짇날 낙랑(樂浪) 언덕에서 사냥대회를 열고, 잡은 돼지와 사슴으로 하늘과 산천 신령에게 제사를 지냈다. 이날 왕과 함께 여러 신하와 5부의 군사들이 모두 따라 갔다." 라고 적혀 있다. “5부의 모두 군사들이 따라갔다”는 내용은, 사냥을 군사 훈련의 하나로 삼은 것을 알려 준다. 말을 잘 타고 활을 잘 쏘아서 짐승을 많이 잡은 무사에게 큰 상을 내린 까닭도 이에 있다. 이러한 사실은 덕흥리 고분과 무용총, 그리고 수산리 고분 벽화를 비롯한 여러 고분벽화에 잘 드러나 있다. 이와 같이 고구려인들은 사냥을 놀이의 목적과 군사적 목적 등 다양한 목적으로 즐겨 행해왔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