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정건축
- 최초 등록일
- 2012.11.26
- 최종 저작일
- 20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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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누정건축에 대한 개요와 그 예로 경회루, 세검루, 한벽루를 비교한 자료 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 누정건축이란?
▷ 누정(樓亭) : 누와 정자를 한꺼번에 부르는 말
* 자연에 대한 인간의 예술적 취향이 풍부하게 적용된 건물
* 자연 속에서 여러 명 또는 혼자서 풍류를 즐기며 정신수양의 장소로 활용되었던 건축물
* 자연 속에서 단독으로 건립되기도 하고, 궁원(宮苑)이나 제택의 정원(庭苑) 또는 별서(別墅)에 건립되어 정원의 일부가 됨
(별서 : 농장이나 들이 있는 부근에 한적하게 따로 지은 집)
* 누정은 풍류를 즐기는 공간으로써의 활용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의 공용 사랑방, 공용집회장, 접객장, 전쟁시의 관측지 기능을 두루 겸하고 있음
* 이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기 위하여 누정은 대개 그 지역에서 가장 산수가 곱고 아름다우며 주변 풍경이 잘 보이는 곳에 건축
◎ 누정건축의 역사
▷ 누정건축의 시작
- 『삼국사기』 고구려 동명성왕 10년(B.C.28) 9월
“난새(鸞鳥; 중국 전설에 나오는 상상의 새)가 왕대(王臺)에 모였다”
- 『삼국사기』 고구려 유리왕 22년(AD 3) 12월
“유리왕이 왕도를 옮기려 하자 대보직(大輔職)에 있던 협부(俠父)가 이를 말렸는데, 왕이 노여워하며 협부를 관원(官園)으로 강등하였다”
→초기부터 궁원을 관리하는 직책이 있었고, 궁원에는 누정건축이 조영되었음을 알 수 있음
- 『삼국사기』 백제 고이왕 26년(259) 9월
“청자색 구름이 궁 동쪽에서 마치 누각처럼 피어 올랐다”
- 『삼국사기』 백제 개로왕 21년(475) 9월
“백성을 모조리 징발해 흙을 쪄서 성을 쌓고, 그 안에 궁궐·누각·사대(射臺)를 지었는데, 모두 장대하고 화려했다”
<중 략>
누상부는 고주 없이 통간으로 형성되었으나 누하부는 측면 주열에 상관없이 주앙열에 마루의 장귀들을 받치는 기둥이 추가되어 있었으며 기둥 높이는 상하층 모두 8자 정도로서 보편적인 치수가 사용되었다.
공포의 형식은 주심포양식과 익공양식이 혼합되어 외출목 도리에 출목첨자 있는 이익공 형태로서 주간에는 화반이 설치되었다. 이러한 형식의 공포가 조선시대 관아 건축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으나 이러한 형식을 지칭하는 용어가 확립되지 못하여 표현이 거추장스럽다.
한벽루
거마도리와 중도리의 간격이 6자 정도이므로 처마 깊이는 지붕 하중의 균형상 6.5자로 설정되었다. 따라서 처마 깊이는 적은 편이 아니다. 누각 건물의 상하층 전체 기둥 높이 16자에 비교 하면 처마가 짧게 보인다. 정면에서는 한편에 복도각의 지붕이 연결되어 그러한 현상이 완화되었지만 측면관에서는 현저하게 느껴진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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