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쇼의 하이카이 그 시작과 끝
- 최초 등록일
- 2012.11.24
- 최종 저작일
- 2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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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바쇼의 하이카이(芭蕉の俳諧)
바쇼의 하이카이가 생겨나기 전, 전성기, 그 끝 등
하이카이의 모든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일본 책을 인용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알려진 하이카이 이상의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바쇼의 하이카이
<번역문>
1615년, 오사카 여름진의 전쟁이 끝나니, 전국의 영주들은 새로운 봉건사회체제를 일제히 정비하기 시작했다. 무사와 함께 상인들이 도시에 모이고 성 밖에는 갑자기 활기가 넘쳤다. 토도의 성 밖, 이가의 우에노 마을도 그 열외가 아니었다. 그쯤, 이가의 ‘츠게’라는 농촌으로부터 마츠오 요자에몽(松尾?左衛門)이라고 하는 한 청년이 우에노 마을에 왔다. 농촌에서는 상품생산이 점차 발전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 밖에 진출해서 상인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관료체제의 확립의 기회를 노리고 무가봉공을 원하는 사람도 있었다. 마츠오 요자에몽은 무가지원이었다. 하지만 왜인지 그 희망은 실현되지 않고 학문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 생계를 꾸렸다. 이 마츠오 요자에몽의 세 명의 아들 중 ‘킨사쿠’라는 아이가 있었다. 요자에몽은 이 킨사쿠를 도도가의 일족인 도도 요시키요의 사자인 도도 요시타다의 시동으로서 출사시킬 수 있게 되었다(1653). 죠오우2년, 킨사쿠가 20살 때였다.
<중 략>
「終に無能無才にして此一筋につながる」라는 말은 하이카이라고 한 길로만 가는 모습으로, 겨우 인간적이려 했던 바쇼의 삶의 방식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의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거기에 있는 여러 가지 중의 하나를 고른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고르면서 창조하는 혹은 창조하면서 고르는 식의 형태인데, 당연하지만 위기적이기도 했다. 그래서 정착하지 않고 여행을 거처로 하는 바쇼의 여행도 이 불안정하고 위태위태한 삶의 방식을 살아간 정신과 무관계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행은 또 퇴폐적인 소비도시인 에도에서는 찾아낼 수 없는 새로운 연중(連衆: 렌가나 렌쿠의 모임에 작자로서 참가하는 사람들)을 찾아내는 것이 것이기도 했다. 하이카이의 본체는 누가 뭐라 해도 렌쿠(連句)였다. 그래서 여행은 함께 연구를 읽는 연중을 찾아내 함께 길을 걸어나가는 것 있었다. 그리고 최조로 찾아낸 것이 오와리 지방의 연중으로, 거기서 하이카이부집(七部集)의 제 1편이 된 [冬の日]가 만들어졌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