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원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12.10.13
- 최종 저작일
- 2009.03
- 5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소개글
일본정원을 크게 3가지로 나누어 정리한 내용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일본의 정원>
일본의 고대 문헌 기록 중에서 정원에 관한 기록을 찾는다면, 그것은『일본서기(日本書紀)』 스이코(推古)천황 때 626년의 일이다. 당시의 실권자였던 소가 우마코(蘇我馬子)는 아스카 강가에 집이 있었는데, 집안에는 연못이 있었고 그 안에는 조그마한 섬을 만들어 두었다고 한다. 즉, 정원을 만들어서 이를 보고 즐기기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였다. 이 소가씨 일족은 백제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집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아스카(飛鳥)·나라(奈良)시대의 정원들은 고고학적인 발굴로 어느 정도 그 내용이 알려져 있다. 예를 들면 나라의 헤이조쿄(平城京)에는 연못이 있었는데, 그곳은 길이 55미터, 최대폭 5미터의 좁고 긴 굴곡을 이루고 있었고, 밑바닥에는 옥돌을 깔았던 것이 확인되었다. 이 연못은 신라의 수도인 경주에 있는 포석정에서 했던 것처럼 당시 일본의 귀족들이 곡수연(曲水宴)을 개최하였던 정원이라고 한다. 곡수연은 궁중의 후원에 구비구비 물이 흘러내려 가도록 물구비를 만들어 놓고, 술잔을 띄우고 시를 읊고 시를 마시며 술을 마시던 놀이인데, 중국에서 3월에 귀족들이 봄놀이의 한가지로 개최했는데 이 풍속이 한국과 일본에도 전해진 것이다.
<중 략>
5. 서방사의 세키테이
선종사원의 양식이나 정원은 선종 도입후 1세기가 지난 뒤에야 일본에 정착하게 되는데 그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던 승려가 바로 무소 소세키(1275 ~ 1351)였다. 그의 수 많은 작품 중에서 교토에 있는 서방사의 정원은 이끼 낀 돌이 주는 그윽한 아름다움으로 유명하여 선종의 세계관을 잘 표현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이 정원이 이후의 정원에 미친 영행이 매우 커서 조선시대에 사신으로 갔던 신숙주(1417 ~ 1475)도 이곳을 방문하여 감탄할 정도 였다고 한다.
서방사는 자연의 지형이나 넓은 연못을 조성하여 극락정토를 연상케하는 정토풍의 정원인데 서방사의 산기슭에는 사는 심경을 표현하는 가레산스이풍으로 돌을 배치한 저우언이 조성되어 선종정원의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서방사에 정원에 있는 흰모래를 구성요소로 한 이와 같은 가레산스이 기법을 구사한 정원을 세키테이라고 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