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양 여운형에 관한 보고서 입니다.
- 최초 등록일
- 2012.08.29
- 최종 저작일
- 20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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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몽양 여운형에 관한 보고서 입니다.
목차
1. 여운형의 일생 (시대순으로 서술형)
2. 여운형 약력 (연대별로 약식형)
3. 여운형 어록
본문내용
건준과 인공 주도한 통합적 민족주의자
몽양 여운형 (夢陽 呂運亨)
- 1886. 5. 25 ~ 1947. 7. 19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패망과 더불어 막을 올린 해방 3년의 정치드라마에서 첫 번째 주역으로 등장한 지도자는 몽양 여운형이었다. 경기 양평 출신으로 만 59세였던 그는 이날 아침 조선 총독부로부터 치안권과 경제권을 비롯해 통치권의 상당한 부분을 이양 받아 조선건국준비위원회(약칭 건준)를 발족시키고, 위원장에 취임한 것이다.
해방 이전 시기의 몽양
여운형은 1886년 5월 25일 (음력 4월22일)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신원리 묘곡에서 아버지 여정현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 이씨가 치마폭에 태양을 받는 태몽을 꾸었다 하여 훗날 몽양이라는 호를 지었다고 한다.
그는 일찍이 신학문과 기독교를 접하면서 개혁사상을 갖게 돼 집안의 노비들을 스스로 해방할 정도로 반봉건에 앞장섰다. 이어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되자 항일운동에 뛰어들었다.
몽양의 항일운동은 3단계를 거치는데, 첫째 단계는 1918~1929년의 중국 망명이다. 그는 처음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약칭 임정)에 참여했다. 그러나 곧 공산주의로 기울어져 모스크바를 방문해 레닌과 트로츠키를 만나기도 했으며, 중국공산당에 대한 신뢰를 나타내기도 했고, 상해에서 국내의 조선공산당을 돕기도 했는데, 조봉암의 소련입국을 도운 것이 이때였다.
참고 자료
해방공간의 주역들 (동아일보사, 김학준 지음)
몽양 여운형선생 기념 사업회 홈페이지 (http://www.mongyang.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