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의외교관계수립
- 최초 등록일
- 2012.07.14
- 최종 저작일
- 20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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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중국과의 관계 개선 모색
2. 한, 중간 무역 대표부 설치와 ESCAP 서울 총회
3. 유엔 가입 후 최초의 한, 중 외무장관 회담
4. 김일성의 중국 방문
5. APEC 각료 회의와 중국 외교부장의 첫 한국 방문
6. 한, 중 수교의 실마리를 찾아
7. ESCAP 총회와 베이징 방문 – 한국 외무장관의 첫 중국 방문
8. 중화민국 정부(타이완) – 의리와 현실
본문내용
1. 중국과의 관계 개선 모색
- 1945년 해방, 1950년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한국은 중국(중화인민공화국)과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 했으나 오랫동안 타이완(중화민국 정부)과는 긴밀한 우호 협력 관계를 지켜 옴
- 1970년대 들어서 국제 정서에 큰 변화가 일어나 한국과 중국간에 홍콩 등 제 3국을 통한 간접 교역이 시작됨
- 1988년 서울올림픽은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변화와 때를 같이하여 동서 냉전 체제의 해체를 촉진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한, 중 양국간의 실질적 관계를 증진시키는 계기를 마련
- 드디어 한, 중 양국은 무역 대표부 설치를 위한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는데, 1989년 1월 중국 국제무역촉진위원회(CCPIT)측이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에 서울과 베이징에 양 기관의 사무소를 상호 개설할 것을 제의
- 1990년 10월 20일 한, 중 양국이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와 중국국제상회(CCOIC)간의 무역 대표부 상호 설치에 합의하여 공적인 대표 기구와 접촉 창구를 마련함
<중 략>
- 한, 중 수교 추진에 대한 활동이 점점 강화되자 타이완은 이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였음. 저자는 김수기 타이완 주한 대사와의 몇 차례 면담을 통해 한, 중이 관계 개선에 성공하더라고 타이완과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할 것임을 강조함.
- 노 대통령 또한 중화민국(타이완) 입법원 대표단과 접견한 자리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고 옛 친구를 버리는 것은 동양적인 윤리에 맞지 않는다고 보며 새 친구를 사귀어도 옛 친구를 더욱 소중히 여기는 게 도리라고 본다” 라는 발언을 통해 타이완과 외교를 단절하는 등의 강경적인 입장을 고수하지 않을 것을 표시하였음
- 국내 일부에서는 타이완과의 외교 관계 유지를 주장하는 신중론도 등장. 한편 타이완 측은 한, 중 수교를 향한 발걸음이 이어지게 되자 서울 명동에 있는 대사관 부지와 건물 처리 문제에 대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