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가족과 친족제도
- 최초 등록일
- 2012.05.05
- 최종 저작일
- 20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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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시대 가족과 친족 제도에 관한 레포트입니다. A+자료이니 믿고 다운 받으세요.
목차
1. 머리말
2. 가족
(1) 가족의 규모
1) 대가족중심설
2) 소가족중심설
(2) 상속
1) 적장자단독상속설
2) 자녀균분상속설
(3) 혼인
3. 친족
(1) 성씨와 계보관념
(2) 양측적 계보관계
(3) 촌수와 ‘나’를 기준으로 한 친속
4. 맺음말
5. 참고자료
본문내용
1. 머리말
과거 역사학의 중심은 정치사 내지 사상사 중심이었다. 하지만 20세기에 전 영역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이 일어나면서, 역사학 또한 소수인종의 역사, 여성사, 일상사 등에 주목하게 된다. 민중의 일상생활에 대한 역사연구 중에 가족 및 친족제도는 빼놓을 수 없는 분야이다. 왜냐하면 `나`는 출생과 함께 가족 및 친족에 소속되고, 전통사회에서 `나`를 일차적으로 규정짓는 것 또한 가족 및 친족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전통사회 가족 및 친족제도에 대한 인식은 조선후기부터 자리 잡은 부계중심의 가부장적 가족제도, 적장자단독상속 제도, 남녀차별 등 이다. 이 글에서는 이와는 다른 고려시대의 가족 및 친족제도에 대해 알아보고, 그 당시 민중들의 삶을 그려봄으로써, 이러한 제도가 현대 가족제도에 주는 의의를 알아보겠다.
2. 가족
(1) 가족의 규모
1) 대가족중심설
고려시대의 가족에 대한 연구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활용되는 자료는 호적자료이다. 이중 호구단자(戶口單子)1)와 준호구(準戶口)2)가 자주 이용되고 있다. 이를 통해 고려시대 가족 규모를 살펴보면 1300년대 이후 총 34호 가운데 약 4분의 3정도가 둘 이상의 부부가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대가족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매우 적은양이기는 하지만 남아있는 호적자료로 고려의 평균 가족원수를 계산해 보아도 위와 같은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국가에서 호적을 작성하는 의도는 국역(國役)을 지는 남자를 파악하려는 목적이기 때문에, 대부분 정남(丁男 : 16~60세 남자)에 관한 기록은 충실하지만 유아(幼兒)와 여자의 기록은 불충실하다. 이러한 것을 고려하여 20세에서 30대까지의 정남을 정점으로 하여 피라미드형의 인구분포를 가정하고 이를 통해 계산하면, 고려의 1호(戶)당 평균 가족수는 10.25명이 된다.
호주의 연령을 고려할 경우 소가족중심설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차남 이하의 분가가 일반적일 경우 30대의 호주가 다수여야 하는데, 실제로는 56~60세의 고령자가 많다는 점에서도 대가족중심설을 입증할 수 있다.
또한 고려시대의 “별적이재금지법(別籍異財禁止法)”이란 형법을 통해서도 대가족중심설의 주장을 뒷받침 할 수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참고 자료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15』, 1995
박용운 외, 『고려시대 사람들 이야기』2, 신서원, 2002
박종기, 『새로 쓴 5백년 고려사』, 푸른역사, 2005
역사비평 편집위원회, 『한국 전근대사의 주요 쟁점』, 역사비평사, 2002
허흥식, 『고려의 문화전통과 사회사상』, 집문당, 2004
한영우 외, 『한국사 특강』,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