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가람배치
- 최초 등록일
- 2002.11.15
- 최종 저작일
- 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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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고구려 사찰
♣백제의 사찰
♣신라의 사찰
♣통일신라의 사찰
♣고려시대의 사찰
♣조선시대의 사찰
본문내용
♣조선시대의 사찰
불상이 봉안된 법당이 예배 대상의 중심이 되어 탑의 규모는 약화되었다. 따라서 탑은 금당의 중심 축 밖으로 옮겨지기도 하고 사원 성역 외곽으로 밀려나서 사찰의 한 장식품으로 변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이후 중창된 사찰엔 거의가 감등의 전면 좌우에 승방용에 해당하는 당우(堂宇)가 놓이고 전정(前庭)에는 누각(강당을 겸함), 천왕문, 금강문, 일주문 등의 순서로 배치된다. 옛 가람의 회랑을 대신하여 선당과 승당, 누등으로 짜여진 중정에서 모든 봉불의례가 행해지며 절이 들어선 골짜기 전체가 사찰의 경내로 되어 가는 경향이었다. 17세기 후반, 종파에 의한 사원의 특징은 약화되는 반면, 가람을 형성하는 공간의 공통적인 특징을 형성하는데, 특히 대웅전 등 본전 건물의 앞마당이 가람의 중심공간을 형성하며 그 앞으로 누각이 조영되어 사찰의 출입과 경관구성을 위한 주요 전각이 되고, 또 마당 좌우에는 요사와 선방이 자리잡게 된다. 그리고 규모가 큰 사찰에서는 이러한 공간이 몇 개의 마당에 의하여 중첩되어 공간이 형성된다. 그리고 사찰을 형성하는 단위 건물은 내부공간이 예불과 집회를 위하여 확장되고 또 장식화 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묘사(廟祀) 및 서원의 배치형식과도 상통된다. 이러한 건물의 배치방법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러 점차로 한국 고유의 발전을 가져오게 된 것으로, 가람의 배치가 좌우대칭이 아니고 불규칙하게 되며, 필요한 건물을 편의에 따라 적당한 곳에 배치하는 방법을 사용하게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