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700년사 개관
- 최초 등록일
- 2012.04.03
- 최종 저작일
- 20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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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백제 700년사 개관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한성시대
1) 근초고왕
Ⅲ. 웅진시대
1) 나제동맹
Ⅳ. 사비시대
1) 황산벌전투
Ⅴ. 백제의 문화
1) 종교와 사상
2) 건축과 미술
Ⅵ. 맺음말
본문내용
한반도 중남부지역에는 고조선의 멸망 이후 파상적으로 남하해온 북방 이주민들이 토착주민과 결합하는 과정에서,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정치세력들이 이미 성장하고 있었다. 온조는 그 이주민집단의 우두머리로 토착세력을 누르고 정치 지배권을 장악해 후대에 백제 왕실에 의해 혈연적·관념적인 시조로 인식된 존재일 것이다. 즉 백제는 기원 전후한 시기부터 마한의 한 세력으로 자체 성장하던 정치체가 모체가 되고, 그 후 고구려계 이주민 세력이 융합됨으로써 성립한 국가라고 할 수 있다.
고구려계 이주민 세력이 주도권을 장악한 이후 백제는 위례성 주변의 여러 집단들을 통합하기 시작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초기 기록에 등장하는 북부의 진씨(眞氏), 동부의 흘씨(屹氏) 등은 온조집단과 결합한 이 지역 토착세력이거나 초기에 통합된 주요 정치세력으로 보인다. 〈삼국사기〉는 온조 당시에 이미 동쪽으로 춘천, 서쪽으로 서해, 북쪽으로 예성강, 남쪽으로 안성 일대까지 영역이 확장되었고, 충청남도 북부 일원의 마한세력도 통합한 것으로 전한다. 그러나 3세기 전반의 한반도 중남부 상황을 전하는 중국측 기록인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의하면, 백제는 마한 50여 개 소국 중의 하나에 불과하며 오히려 목지국(目支國)이 마한연맹체를 주도해간 것으로 나오고 있다. 당시 백제는 마한의 유력한 소국의 하나였지만, 마한 전체를 통합하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다만 3세기 전반까지 백제의 주변 소국에 대한 통합이 상당한 정도로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크고, 특히 인천의 미추홀(彌鄒忽) 세력에 대한 통합은 이 시기에 이미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미추국(彌鄒國)이라는 개별 국명이 〈삼국지〉 단계에서는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미추홀세력은 비류를 시조로 하는 자체의 시조설화를 온조설화와 함께 후대까지 전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아, 통합 후에도 백제 지배층의 최상층부에 포함되었던 큰 세력으로 보인다. 미추홀 세력의 통합은 백제를 한반도 중부의 신흥 강국으로 부상시켰을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