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의 고원을 넘어서
- 최초 등록일
- 2011.12.15
- 최종 저작일
- 2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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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의 고원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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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사실 관계를 파악하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발생하는 지적 불확실성이 두려운 낯섦을 창조한 것이다. 프로이트가 모두 봉쇄해버린 오이디푸스의 고원 외부에야말로 「모래사나이」를 읽기 위한 우회로들이 존재한다. 옌치가 말한 지적 불확실성은 다른 999개의 고원 중 하나이다.
「모래사나이」라는 소설 전체가 현실과 판타지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기 때문에 독자가 믿을 수 것은 전무하다. 작품 이해에 필수적인 코펠리우스와 코폴라가 과연 동일 인물인지, 코펠리우스가 실제로 나타니엘을 가학적으로 처벌했는지 같은 정보에 대해서조차도 나타니엘의 흐린 판단력에 기댈 수밖에 없다. 코펠리우스에게 강렬한 트라우마를 품은 나타니엘이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만난 행상 코폴라에게서 코펠리우스의 잔상을 보지만 작품 어디에도 굉장한 유사성을 가진 두 인물이 동일인이라는 설정은 공개되지 않는다. 프로이트만큼 엄격한 공식을 세워두고 읽지 않는 독자는 누구라도 지적 불확실성에 빠지게 된다.
주인공의 판타지와 현실을 교차시켜가며 평면적인 감상을 방해하는 기법을 들뢰즈는 낯설게 하기라 명명한바 있다. 나타니엘의 정신착란적 시각을 그대로 전달하여 사실판단의 정확한 잣대를 쥐어주지 않은 작가의 의도는 독자가 작품을 낯설게 보아주기를 바란 데에서 있다. 작가가 지적 불확실성에서 기인한 섬뜩함을 생산했으니 이를 소비해야 마땅하다. 영화 전반에 걸쳐 주인공의 시야에 비친 주관적 쇼트만을 사용하는 로버트 몽고메리의 <호반의 여인>이나 무성영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의 절대적 고독을 어떠한 음성도 들리지 않는 청각적 효과로 표현해낸 러셀 로우즈의 <도둑>은 지적 불확실성을 사용해 낯섦을 자아낸 대표작들이다. 「모래사나이」를 영화화한다면 서사나 기법 면에서 미셸 공드리의 <수면의 과학> (2005)과 비슷할 것이다. 주인공의 망상에 해당하는 부분을 그나마 점토 애니메이션으로 대체하는 <수면의 과학>보다 더 불친절한 작품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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