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근대화론 설명과 반론
- 최초 등록일
- 2011.09.21
- 최종 저작일
- 20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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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본인들이 주장했던 식민지근대화론, 한마디로 일본의 식민지배를 통해 근대화될 수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주장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살펴보고 이에 대해 반론을 조목조목 일목요연하게 나열하고 있습니다.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입니다.
목차
I. 식민사관의 정의와 발전과정
II. 식민사관의 내용
1. 타율성 이론
2.정체성 이론
III.내재적 발전론에 대한 비판
1. 수탈론에 관한 반론
(1) 토지신고서의 조작을 통한 소유권 변동은 가능했는가?
(2) 분쟁지
(3) 지가조사는 지세수탈을 위해 수행되었나?
2. 자본주의 맹아론에 관한 반론
3. 내재적 발전론이 만들어지는 상황에 관한 반론
IV. 소결론
본문내용
I. 식민사관의 정의와 발전과정
植民史觀 일제가 한국 침략과 식민통치를 합리화하기 위해 만든 역사관. 한민족의 자주적 역사발전 과정을 부정하고 한국사가 타율적이고 정체적으로 진행되었다고 서술해 민족의식을 말살하려 했다. 식민사관에 바탕한 한국사연구는 일제강점기 내내 이루어졌지만 그 원형은 이미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확립되었다. 일본 도쿄[東京]제국대학에 1887년 사학과, 89년 국사과가 설치되면서 독일 랑케사학의 문헌고증학 방법론에 의한 근대적 방식의 한국사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특히 요시다[吉田東伍]·하야시[林泰輔]·시라토리[白鳥次吉] 등이 중심이 되어 한국고대사를 집중 연구했다. 이 연구는 20세기 초 한국 침략이 본격화되자 그 침략행위를 합리화·정당화하기 위해 크게 세 방향에서 진행되었다. 첫째, 에도[江戶]시대 이래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日本書紀)》 등 일본고전 연구 국학자들이 주장하던 신공(神功)황후의 신라정복설,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을 계승한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이 강하게 나타났다. 1877년 간행된 《일본사략(日本史略)》을 개정하여 90년 도쿄제국대학 교수 시게노[重野安釋]·구메[久米邦武! ]·호시노[星野恒]가 공동 저술한 《국사안(國史眼)》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된 일선동조론은 한일합병을 합리화시키는 이념으로 한민족의 존립 자체를 부정하는 동화정책의 논리적 근거로 이용되었다. 둘째, 시라토리 주도 아래 1908년 만철(滿鐵)내에 설치된 만선지리역사조사실(滿鮮地理歷史調査室)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이나바[稻葉岩吉]·이케우치[池內宏] 등의 역사학자들을 통해 만선사(滿鮮史)가 성립되었다. 만선사는 만주사를 중국사에서 떼어내 한국사와 한 체계 속에 묶어 만주에 대한 중국의 주권행사를 제한하는 역사적 논거 제시에 그 목적이 있었다. 동시에 한국사를 만주사에 종속된 역사로 파악하여 그 독자적 발전과 주체성을 부정하는 논리로 나타났으며, 그 뒤 한국사의 타율성론으로 진행되어 갔다. 셋째, 경제사를 연구하는 후쿠다[福田德三]·구로타[黑田岩] 등을 중심으로 한국 경제가 일본 고대 말기 촌락경제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정체성이론이 등장하였다. 이는 한국사회가 사회경제구조 발전이 전무한 정체된 사회이므로 근대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일본의 침략은 필수적이라는 침략미화론으로 연결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