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가의 생애와 사상
- 최초 등록일
- 2011.09.13
- 최종 저작일
- 2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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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박제가는 영조 26년 승지 박평의 서자로 출생. 부친을 일찍 여의어 그의 가정의 생활고는 두드러졌다, 하지만 모친의 정성스러운 뒷바라지로 인해 박제가 자신은 생활과 관련한 어려움은 크게 겪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박제가의 모친은 자신을 희생하여 박제가를 뒷바라지 한 것으로 판단된다. 박제가의 자는 치수 또는 재선을 지니었으며, 호는 정유, 위항도인 이었는데 보통 초정으로 불리었다. 이덕무, 유득공, 이서구 그리고 박제가 네 명이서 건연집 이라는 사가시집 간행하였으며, 1778년에 이덕무와 함께한 연행길에서 당대 건륭제 시의 사고전서 편찬과, 청의 발전된 문물 등에 자극을 받은 것과, 사고전서 편찬 과정에 참여한 학자들과 교제한 내용, 연행 후에 느낀 견문과 생각을 모아 북학의를 저술하였다.
목차
1. 박제가의 생애
2. 박제가의 저술활동
3. 북학의의 주요 내용
4. 박제가의 경제사상
본문내용
박제가는 영조 26년 승지 박평의 서자로 출생. 부친을 일찍 여의어 그의 가정의 생활고는 두드러졌다, 하지만 모친의 정성스러운 뒷바라지로 인해 박제가 자신은 생활과 관련한 어려움은 크게 겪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박제가의 모친은 자신을 희생하여 박제가를 뒷바라지 한 것으로 판단된다. 박제가의 자는 치수 또는 재선을 지니었으며, 호는 정유, 위항도인 이었는데 보통 초정으로 불리었다. 이덕무, 유득공, 이서구 그리고 박제가 네 명이서 건연집 이라는 사가시집 간행하였으며, 1778년에 이덕무와 함께한 연행길에서 당대 건륭제 시의 사고전서 편찬과, 청의 발전된 문물 등에 자극을 받은 것과, 사고전서 편찬 과정에 참여한 학자들과 교제한 내용, 연행 후에 느낀 견문과 생각을 모아 북학의를 저술하였다. 정조시대의 북학론자에 대한 정조의 관심과 서얼 등용책(서얼허통법)에 힘입어 관직에 임용.(1792년에 검서관직을 물러나 부여현감을 지내었으며, 정조 승하이후 순조 원년의 신유사옥에 휘말리기도 하였다. 네 번째 연행이후 신유사옥을 비판하는 괴문서에 연루되어 함경도 종성에 유배되었다가 순조5년째에 풀려났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