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삼국시대와 북방민족과의 관계
- 최초 등록일
- 2011.07.19
- 최종 저작일
-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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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 삼국시대의 각 나라별 북방민족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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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삼국 시대의 중국과 이민족의 관계
유비가 백제성에서 죽은 후, 사마의는 조비에게 다섯 방향에서 군대를 일으켜 촉을 칠 것을 건의한다. 그런데 사마의가 말한 다섯 방향에서 두 방향은 이민족으로 구성된 부대였다. 이처럼 후한 말에서 삼국시대에는 이민족을 자신의 세력에 편입시키고, 또는 정벌하기도 하였다. 이 보고서에서는 『삼국지 위지』중, 「오환선비동이전」에 언급되고 있는 오환, 선비, 그리고 우리 민족이 기록되어 있는 동이전 가운데 부여, 고구려, 동옥저, 예, 왜인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겠다. 원래 「오환선비동이전」에는 각 부족과 나라의 기원과 역사, 생활 모습도 같이 언급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주로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만 주로 살펴보겠다.
오환(烏丸) 『사기』,『한서』,『후한서』에는 `烏桓` 이라고 씌여 있다.
오환(烏丸)은 옛날의 동호(東胡)이다. 한나라 초, 모돈 선우가 그 나라를 멸망시키자, 살아남은 자들이 오환산(烏丸山)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오환이라고 부른 것이다. 후한 말 국내 사정이 복잡하자 그들은 막남(漠南) 지금의 내몽고 지역
땅을 어지럽게 하였다. 한말에 요서(遼西)의 오환 대인 구력거(丘力居)는 5천여 부락을 거느렸고, 상곡(上谷)의 오환 대인 난루(難樓)는 9천여 부락을 거느렸는데 각자 왕이라고 하였다. 따로 요동 속국의 오환대인인 소복연(蘇僕延)은 1천여 부락을 손에 넣고 `초왕`이라고 했고, 우북평의 오환대인은 오연(烏延)은 8백여 부락을 끼고 자칭 `한로왕`(汗魯王)이라고 했다. 중산 태수 장순이 모반하여 구력거의 휘하에 들어가 스스로 `미천안정왕`(彌天安定王)이라고 하고 삼군 오환의 원수가 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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