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숙주묘를 찾아서
- 최초 등록일
- 2011.03.20
- 최종 저작일
- 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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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신숙주묘를 직접 찾아간 기행문으로 한글창제와 관련지어 이야기를 풀었습니다. 실제 신숙주묘의 사진도 삽입되어 있습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4월 26일, PM 12:00
김포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 가다보면 의정부 고산동에 도착하게 된다. 그 곳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의정부 교도소 입구 건너편 도로로 진입하여 2km 가량 들어가면 산으로 둘러싸인 작고 예쁜 마을이 있는데, 그곳에서 일명 뒷산으로 불리는 곳에 신숙주, 그의 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신숙주 선생은 세종부터 성종에 이르기까지 6명의 왕을 모시며 다양한 업적을 세운 성공한 관료로 훈민정음 창제에도 커다란 공을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사육신과 달리 세조를 선택한 변절자라는 낙인이 찍혀 ‘숙주나물’이라는 우스꽝스러운 별명까지 얻을 정도로 후대에 폄하를 당한 인물이다. 실제로도 중학교 때 신숙주에 대한 언급을 했을 때 국어 선생님과 국사 선생님이 다르게 평가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듯 극단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그에 대해서 궁금한 마음에 훈민정음과 관련된 많은 곳 들 중에서도 그의 묘를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 1. 신숙주 그는 누구인가? 신숙주(1417-1475)는 조선초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고령이고, 자는 범옹, 호는 보한재 시호는 문충으로 세종 21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참고 자료
손보기,『세종대왕과 집현전』,서울: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84
김남이.『집현전 학사의 삶과 문학 세계』,서울: 태학사, 2004